최근 K-패션이란 타이틀을 등에 업고 해외 진출을 꿈꾸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반대로 해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수 시장에 진출한 사람이 있다. 바로 요하닉스(YOHANIX)의 김태근 디자이너다.
김태근 디자이너는 2016 F/W 뉴욕패션위크(NYFW)를 비롯해 밀라노패션위크(MFW), 서울패션위크(SFW)까지 장악하며 국내외 패션 관계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 전 학장인 사이먼 콜린스(Simon Collins)는 김태근을 통해 K-패션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아마도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모습에 반한 게 아닐까 싶다.
현재 패션 산업은 신선한 오리지널리티와 독특한 아이덴티티로 무장한 패션 디자이너들조차 살아남기 힘든 구조다. 처음에는 운이 좋아 돈을 벌 수는 있어도 한 시즌만 삐끗해도 모든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 속에 원래 갖고 있는 색깔을 고집하고 창의성을 발휘한다는 것은 큰 각오가 필요하다. 그러나 김태근 디자이너는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트렌드를 읽어내는 민첩함과 영민함으로 요하닉스만의 시장을 만들어냈다. 국내에서는 신진(?) 디자이너지만 해외에서는 베테랑 디자이너인 김태근의 이야기를 전한다.
Q 요하닉스는 어떤 브랜드인가?
요하닉스는 2009년 런던에서 론칭한 여성복 디자이너 브랜드다. 레드카펫 위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비즈와 스터드, 자수 디테일을 접목해 화려하지만 스트리트 감성이 깃든 오트쿠튀르를 지향한다.
Q 최근 컨셉코리아를 통해 뉴욕패션위크에 진출했다.
사실 해외 패션쇼를 이렇게 빨리 할 거라고는 예상을 못했다. 국내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은 뒤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뜻밖의 기회가 찾아와 뉴욕패션위크에 나가게 됐다. 컨셉코리아 측에서 패션쇼 진행이나 모델 캐스팅, 홍보까지 스무스하게 진행해 옷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다음 시즌에 꼭 컨셉코리아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뉴욕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줬다.
Q 뉴욕패션위크를 계기로 밀라노패션위크와 서울패션위크에도 오르게 됐는데?
올해는 운이 좋은 것 같다. 밀라노패션위크는 세계 3대 성당으로 불리는 두오모 성당 지하에 위치한 로만 바스(Roman Bath)라는 유적지에서 진행했다. 일종의 오프닝 패션쇼라고 생각하면 된다. 두오모 광장에서부터 지하까지 펼쳐진 레드카펫을 따라 모델들이 이동했다. 요하닉스가 추구하는 지향점과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서울패션위크의 경우 올해 요하닉스가 국내 진출 계획을 가지고 있어 그 의미가 더욱 깊었다.
Q 뉴욕패션위크, 밀라노패션위크와 서울패션위크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일단 서울패션위크의 경우 인지도적인 측면에서 확산되는 속도가 다르다. 국내 바이어 및 프레스 나아가 중국 패션 관계자들의 연락은 많이 오는 편이지만 해외와 비교했을 때 실질적인 비즈니스로 연계되는 경우는 낮다.
이번 컬렉션은 올리버 에게스(Oliver Jeges)의 「결정장애세대」라는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았다. 올리버 에게스는 “우린 모든 걸 원한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기는 한데 그 관계는 어디까지나 쿨해야 하고,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기는 한데 방은 따로 써야 한다. 콜라 광고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맛은 백 퍼센트 즐기면서 설탕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은 그런 걸 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늘 자기를 완벽하게, 전체적으로 최적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라고 말했다. 굉장히 공감되는 구절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은 수많은 정보에 노출돼 있다 보니까 오히려 선택의 어려움을 겪는다. 예를 들면 성공사례를 쉽게 접하게 되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거나 혹은 아침에 어떤 옷을 입을지,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도 쉽게 고르지 못하는 결정장애세대가 됐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역으로 이용해 정보의 홍수 속에 있기 때문에 멀티태스킹 또한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Q 이번 컬렉션을 처음 접했을 때 동양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고 느껴졌다.
요하닉스의 시그니처가 비즈와 스터드, 자수다. 잠바티스타 발리(Giambattista Valli)나 델포조(Delpozo)가 지향하는 방향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전체적으로 봤을 땐 웨어러블하지만 오트쿠튀르적인 디테일이 들어가 있고 실루엣 자체는 심플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우아한 모습 말이다. 이러한 오묘한 경계선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Q 뉴욕, 밀라노, 서울의 패션쇼에서 흘러나왔던 음악이 굉장히 친숙했다. (웃음)
시작 부분에 위너(Winner)의 송민호가 부른 ‘겁’이란 노래가 나왔다.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 대한 불확실함, 실패에 두려워 소리를 지르거나 일부러 강한 척을 했다고 말한다. 이번 컬렉션의 테마와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했다. 사실 내부적으로는 의견이 분분했다. 해외 패션쇼에서 K-POP을 튼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Q 현재는 스트리트 패션이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지만 몇 년 후에는 트렌드가 또 뒤바뀔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은 있는가?
그 부분에 대해 계속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향후에 요하닉스가 산으로 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지금은 노력해서 나아가는 시점이지 정착하는 단계가 아니다. 트렌드에 대해 예민해져야 되고 끊임없이 연구를 거듭하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친 후 완성된 요하닉스는 더욱 단단해질 거라고 확신한다.
Q 옷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항상 ‘나라면 이 돈을 주고 이 옷을 살까?’라는 생각을 먼저 한다. 같은 돈이라면 해외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 아닌 요하닉스를 선택할지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려 노력한다. 소위 말해 가성비가 있느냐 없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Q 요하닉스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가치는?
한마디로 ‘자신감’이다. 우리 옷은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보통의 사람들이 입었을 때 한눈에 확 들어올 수밖에 없는 디자인이다. 보통의 사람과 요하닉스가 만났을 때의 시너지 효과를 전하고 싶은 거다.
Q 미래의 요하닉스를 그려본다면?
패션 디자이너라면 모두들 공감할 것이다. 정말 멋있는 패션쇼를 열고 싶다.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가 디올(Dior)에 있을 때나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이 살아있을 때 그들이 했던 패션쇼처럼 룩북이나 쇼룸에서는 접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이뤄보고 싶다. 패션쇼에는 옷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단 10분을 위해 무대 장치와 음악, 모델 등 수많은 요소들을 활용해 함축적인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더욱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아. 그리고 한가지 더 바라는 점이 있다면 꿈의 직장을 만드는 것이다. 서로 어려움 없이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수평적인 구조 말이다.
Q 마지막으로 요하닉스를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요하닉스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들의 응원 한마디가 요하닉스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앞으로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인 소통을 이어갈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진정성 있는 옷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 패션서울 | 글 구하나 기자 | 사진 이대산 포토그래퍼 @photo.by.san
# YOHANIX 2016 F/W NEW YORK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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