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대중들에게 패션으로 하여금 공감을 얻고 사랑을 받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스타 디자이너’라고 부른다. 대표적으로 존 갈리아노 왕국이었던 디올(Dior)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라프 시몬스(Raf Simons)부터 1994년 파산 위기에 직면한 구찌(Gucci)를 부활시킨 톰 포드(Tom Ford)까지 수많은 이들이 있다.
국내의 경우 각종 매스 미디어에서 ‘스타 디자이너’라는 수식어를 내걸며 무분별하게 ‘스타 디자이너’들을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이 1년 뒤, 2년 뒤 혹은 3~4년 뒤에도 남아 있을지는 의문이다. 현재의 상황이 그렇다. 패션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얻기에도 쉽지만 잃기에도 쉽다.
최근에는 ‘맨투맨 디자이너’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는 온전히 고객의 입맛에 맞춘 디자인과 유통 업계의 꽃인 편집숍에서 살아남기 위해 디자이너들이 선택한 최후의 수단을 우스갯소리로 표현한 것이다. 만약 국내 디자이너들의 맨투맨을 한데 모아놓고 상표를 전부 떼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누구의 디자인이고 어떤 브랜드인지 구별해낼 수 있을까? 참 웃픈 현실이다. 물론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디자이너들 가운데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만이 200% 옳다는 것이 아니다. 결국 디자인은 판매와 직결되는 문제다. 상업적인 부분을 강조한 이들도, 예술적인 측면을 바라보는 이들도 결국 큰 틀 안에서는 디자이너긴 매한가지다.
최근에 만난 디자이너 가운데 일부는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처하는 행동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대중적인 디자인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거나 혹은 국내외 패션쇼에 오르며 예술적 가치를 향상시켜도 두 영역에서의 옳고 그름은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다만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한 화두로 야기된다고 전했다.
# 비욘드클로젯은 나를 닮은 브랜드
비욘드클로젯(Beyond Closet)을 이끄는 고태용 디자이너는 ‘스타 디자이너’라는 타이틀과 함께 아티스트로서도 호평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기존 디자이너들과는 다른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반인들과는 다르고 또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사람이 아닌 가까운 동네 형처럼 친근하고 가볍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패션이 단순히 옷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고태용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무려 98만 7,000명이다. 요즘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배우 박보검의 팔로워 수가 55만 5,000명인 걸 감안하면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난다. 이렇게 고태용이 대중들의 뜨거운 사랑과 관심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상업과 예술을 오가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지켰기 때문이다.
고태용은 일명 ‘개티’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그는 비슷한 맨투맨이 하루에 몇 천장씩 생산되는 가운데 자신만의 ‘정체성’도 지켰고 ‘상품성’도 지켰다. 맨투맨의 상표를 전부 떼버렸을 때 ‘개티’만큼은 확실히 구별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다고 고태용이 상업적인 디자인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고태용은 올해로 9년째 서울컬렉션에 오르고 있는 베테랑 디자이너다. 그의 티켓은 어느 누구의 쇼보다 빠르게 매진된다. 국내에 몇 안 되는 진짜 ‘스타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셈이다.
고태용은 자신의 예술적 감성을 담은 컬렉션 라인과 대중들을 위한 캠페인 라벨 총 2가지로 철저하게 분리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개티’를 팔아서 서울컬렉션에 오른다는 것이다. 어쩌면 고태용을 ‘영리한 남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으니까.
“얼마 전 지코와 술을 마셨다. 그 친구와 나는 닮은 구석이 많다. 지코도 블락비를 통해 인지도를 쌓고 솔로 앨범으로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국내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한 후 비욘드클로젯만의 조미료를 뿌려 대중적인 디자인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발생한 수익금으로 서울컬렉션에 오른다”
고태용이 ‘스타 디자이너’로 떠오른 또 다른 이유는 디자인이다. 그의 디자인은 항상 새로움과 파격에 맞닿아 있다. 또 서브컬처가 가지는 태도를 누구보다 패션으로 잘 녹여내는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정교하게 만든 의상보다는 눈에 즉각적으로 보이는 개성, 젊음의 파격 같은 것 말이다. 패션은 심오해야 한다고 고집하던 이들도 이제는 고태용을 인정하고 그가 걸어온 길을 뒤따르고 있다.
“비욘드클로젯은 나를 닮은 브랜드다. 나름대로 철학도 있고 뿌리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한없이 자유롭고 가볍다”
Beyond Closet 2016 S/S HERA SFW ‘NOMANTIC’
고태용은 2016 S/S 시즌 로맨틱하지 않은 남자가 꿈꾸는 로맨틱을 뜻하는 ‘NOMANTIC(NOT ROMANTIC)’을 테마로 낭만적인 패션쇼를 선보이며 소년에서 남자로 발돋움했다. 한편으로는 현재 혹은 과거의 연인에게 비밀스러운 암호를 전하는 듯했다. 나도 로맨틱을 꿈꾸는 남자라고. 그만큼 현실적이었단 얘기다. 패션에 문외한 이들도 쇼를 접했을 때 전혀 어렵지 않다고들 했다. 패션은 상업적인 측면과 동시에 예술성도 함께 이어져야 보는 이들에게 좋은 방향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번 시즌에는 색다른 시도도 감행한다. 언제까지 ‘개티’로만 기억될 수는 없지 않은가? 젊은 세대가 경험해보지 못한 서울의 핫플레이스, 예를 들면 이태원이나 경리단길, 삼청동에서 파생된 유스 컬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한국의 라프 시몬스를 꿈꾸는 것처럼… 고태용은 지드래곤, 유아인, 김원중처럼 자신이 유스 컬처를 직접 리드할 수는 없지만 젊은이들에게 유스 컬처란 무엇인지, 또 어떻게 느끼는지, 즐기는지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스 컬처(Youth Culture): 어떤 사회의 청년층이 가지고 있는 행동 양식이나 가치관 전체를 대표하는 청년 문화.
그러면서 고태용은 신진 디자이너들에 대한 고민도 한발 앞서 안고 있었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맨투맨 10장을 만들기보다는 적어도 자신의 색깔과 3년 후, 5년 후를 위한 계획을 마련하고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전했다.
“요즘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언제 론칭하냐고 물으면 돈이 어느 정도 모인 후라고 대답한다. 답답하다. 돈이 아니다. 발로 뛰고 눈을 열면 생각보다 기회는 많다. 옷이 팔리지 않는다고 누구를 원망할 것이 아닌 자신만의 색깔과 계획을 가지고 한 길을 걷는다면 분명히 때가 온다. 내가 지금까지 비욘드클로젯을 이끌 수 있던 이유다”
단순히 옷장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그 너머로 보이는 세상까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미술과 책, 영화, 음악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흡수해 놓으면 당장 내일은 아닐지라도 언젠가 폭발할 날이 온다고 조언했다. 당신들은 한국 패션의 미래라는 말과 함께.
ⓒ 패션서울 | 글 구하나 기자 | 사진 이대산 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