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CHANEL), 생 로랑(SAINT LAURENT), 에르메스(Hermès), 지방시(Givenchy) 등 프랑스 패션 경영자들이 기존의 패션쇼 형식에서 현장 직구(BUY NOW-SEE NOW)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반대 표를 던졌다.
세계 4대 패션위크 중 하나이자 가장 역사 깊은 파리패션위크(PFW)를 주관하고 있는 파리의상조합(La Chambre Syndicale de la Mode Masculine) 회장 겸 끌로에 CEO인 랄프 톨레다노(Ralph Toledano)도 미국과 영국의 일부 경영자들이 현장 직구 방식으로 변경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패션 일간지 WWD를 통해 소비자들이 패션쇼에 오른 의상을 사기 위해 몇 개월 동안 기다리는 것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우리의 고객들은 학식이 있기 때문에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알고 있다. 또한 우리의 클라이언트들은 패션쇼에 오른 의상을 기다리는데 익숙하고 그 기다림은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망을 증폭시킨다.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현장 직구 방식은 마케팅을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브랜드로 비칠 우려가 있다. 세계 4대 패션위크 중 가장 권위 있는 파리패션위크는 장인들이 창조물을 작업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큰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발행하는 계간지 WSJ 매거진은 몇 해 전 ‘명품의 변화된 지위’라는 타이틀의 특집에서 “어떤 차를 몰고 몇 년산 와인을 마실 것인지 더 이상 괘념치 않게 되는 일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명품 업체들은 생존 차원에서 소비자에 대한 접근 방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제는 소비자들이 높은 가치의 상품을 예전보다 빠르고 또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럭셔리(LUXERY, 명품)’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고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 것이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SNS(사회 관계망 서비스) 등이 우리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면서 패션의 생산, 유통, 소비 방식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 DVF 디자이너 겸 뉴욕패션위크(NFW) 협회장인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Diane von Furstenberg)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통적인 패션 업계의 일정 때문에 가장 혜택을 보는 곳은 자라, H&M, 포에버 21과 같은 글로벌 SPA 브랜드다. 패션쇼에서 선보인 의상은 매장에 나오기도 전에 복제돼 저렴한 가격에 팔려나간다. 지금처럼 4~6개월 전에 미리 진행하는 패션쇼 방식은 SNS를 통해 바로 구매하기를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혼란과 좌절을 주고 있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을 위한 그들만의 패션쇼가 아닌 소비자들을 위한 축제가 돼야 한다”
버버리(BURBERRY)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 겸 CEO인 크리스토퍼 베일리(Christopher Bailey)도 2016 F/W 뉴욕패션위크 불참을 선언하며 혁명적인 선언을 했다. 내용은 이렇다.
“버버리는 올해 9월부터 향후 패션쇼 일정 및 매장 판매 방식을 기존 패션계 방식과 다르게 운영할 예정이다. 그동안 매년 네 차례(1, 2, 6, 9월) 선보였던 남성복과 여성복의 패션쇼를 통합해 연 2회(2, 9월) 열 것이다. 패션쇼 명칭은 기존의 봄∙여름 컬렉션과 가을∙겨울 컬렉션이 아닌 버버리 컬렉션으로 칭한다. 패션쇼에 나온 옷들은 즉시 매장과 온라인 스토어를 통해 판매할 것이다. 버버리는 시즌의 경계를 없애고 보다 즉각적이며 개인화된 방식으로 고객을 만나겠다”
일부 프랑스 패션 경영자들과 미국과 영국 패션 경영자들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프랑스 패션 경영자들은 패션쇼에 오른 의상을 기다리는 것에 전혀 문제 될 것이 없고 이 기다림은 소비자들의 소비 욕구를 진작시킨다는 의견을 표했으며 미국과 영국 패션 경영자들은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패션쇼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혼돈의 순간에 직면한 패션계, 수십 년간 이어온 명성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구시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맞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