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부터 문을 여는 동대문도매시장. 영업시작 30분전부터 쇼핑몰 주변이 북적북적했다. 매장 문 열 시간이 임박해 오자 사람들이 문 앞으로 몰려들었다. 한국말 소리가 조금씩 들리긴 했지만 이들 대부분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온 중국인들이었다. 나도 그 틈에 자연스럽게 끼어서 줄을 섰다.
“그런데 여기 중국사람 진짜 많지 않냐?” 친구처럼 보이는 한국여성들의 얘기소리가 내 뒤에서 들려왔다. 그들도 나랑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히죽 웃음이 나왔다.
시계의 초침이 정확히 8시15분을 가리키자 줄을 섰던 사람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각 매장의 직원들은 전국각지 소매상으로 나갈 물건포장에 정신이 없었다. 천천히 매장들을 구경하다 그래도 제일 한가해 보이는 집으로 들어갔다.
“혹시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
“아이 안돼요. 안돼. 지금 바빠서 못해요.” 남자직원은 내 얼굴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일을 계속했다.
“아 그래요. 아주 잠깐이면 되거든요. 한 3분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보시다시피 지금 할 일이 많아요. 지금 바로 영업 시작했는데 다른 거 할 시간이 없어요.” 직원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마치 ‘이 양반이 지금 영업 개시했는데 와서 고춧가루를 치려고 하나’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상인들 사이에서는 ‘첫 개시 손님이 환불이나 교환을 요구하면 그 날 장사는 꽝이다’라는 소리가 있다.
약간 민망한 표정으로 매장을 나서는데 뒤에서 그 직원이 한마디 덧붙였다. “아마 다른데 가셔도 마찬가지일걸요. 인터뷰하려면 새벽 2시는 넘어야 할 거예요.”
그 말은 사실 인 것 같았다. 그 후 4~5군데 매장에 들어갔지만 모두들 바쁘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렇게 취재요청을 거절당하고 쇼핑몰 2층을 배회하는데 한쪽에 여성기본스타일의 옷을 팔고 있는 작은 매장을 발견했다. 한걸음에 달려가 조심스럽게 인터뷰 요청을 했더니 흔쾌히 응해줬다.
젊은 여성 디자이너 이야기
“인터뷰 고맙습니다. 사실 여기 오기 전에 몇 번 거부당했거든요. 이번에도 거부당하면 그냥 집에 가서 밥이나 먹으려 했어요. 근데 여기 사장님이세요?” 내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웃으며)아니 전 디자이너예요.”
“디자이너요? 왜 여기 오셨어요? 요즘 디자이너도 영업 뛰나요?”
“영업이라뇨. 보통 낮에는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요. 월요일에 시장조사하러 도매시장에 와요.”
“좋습니다. 동대문도매시장이 <두타>, <밀리오레>, <헬로apm>같은 일반 소매시장보다 얼마나 싼가요? 솔직히 말해주셔야 합니다.”
“음…보통 70~80%정도 싸죠. 예를 들어 여기서 3만원짜리가 거기서는 5만5천원정도라고 보면 되요. 잘하면 2배띄기까지 가능하죠.”
갑자기 그 동안 동대문 소매시장에서 쓴 돈이 생각났다. 뭔가 많이 손해를 본 것 같은 기분이랄까.
“오. 완전 싸네요. 그럼 티셔츠 1장도 살 수 있나요?”
“에이 그래도 최소 2장이상은 사야죠. 안 그래도 싸게 파는데 1장 가지고 어떻게 장사를 해요? 여긴 말 그대로 도매시장이기 때문에 1장씩 팔면 장사 못해요.”
“그래도 1장씩만 찾는 손님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하하. 있지요. 있어요. 보통 1장씩은 잘 안 주는데 그래도 좀 친해지거나 사정하면 팔기도 해요. 원래 세상사 다 그런 거죠”
“우리나라에서 동대문도매시장보다 옷을 더 싸게 살 수 있는 곳이 있나요?”
“한국에서 만든 옷, 다시 말해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가 찍혀서 나가는 옷은 여기 동대문도매시장이 제일 싸다고 보면 되요.”
“그럼 도매시장 옷은 어디서 가져오나요? 혹시 여기보다 더 싼 어딘가에서 가져오는 건 아닌가요?” 의심 많은 내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취조하듯 물었다.
“(황당한 듯)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아까도 말했듯이 여기보다 싼 데는 없다고 보면 됩니다. 여기 거의 모든 매장에는 디자이너가 있고, 의류제조공장을 가지고 있어요. 순서를 설명하면 디자이너가 옷을 디자인하면 제조공장에서 옷을 만들고 그 완성품을 가지고 와서 여기서 파는 거에요. 물론 우리나라에서 디자인을 하고 해외공장에서 생산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경우 단가가 더 싸질 수 있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파는 옷은 여기가 제일 싼 건 맞아요.”
“공장은 어디에 있죠?”
“몇 군데 있는데 왕십리에도 있고 남대문에도 있어요. 그런데 요즘 옷 공장이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베트남, 방글라데시, 중국으로 나가서 국내공장에서 옷을 만드는 분들의 생계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국내소비자 분들이 우리나라 옷을 많이 입었으면 좋겠어요.” 젊은 디자이너는 몹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동대문 사정은 어떤가요?”
“동대문 경기도 예전보다 많이 안 좋아졌어요. 특히 SPA브랜드가 대량생산해 저렴한 가격으로 옷을 팔고 있다 보니까 동대문도매시장 역시 시장을 많이 뺏긴 상태랍니다. 솔직히 저도 SPA브랜드 많이 사는데 사보면 봉제도 별로 안 좋고 단지 싼 맛에 사는 거죠. 품질은 확실히 국산이 좋아요.”
얘기가 다 끝나갈 때쯤 가게 사장님이 들어오더니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아니 왜 우리 같은 작은 집을 인터뷰해. 크고 예쁜 가게들 많은데. 그나저나 너희(직원들에게) 밥은 먹었니? 김밥 시켜줄까?”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더 있으면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서둘러 매장을 나와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직원부터 시작해 지금은 사장이 된 남자이야기
첫 번째 인터뷰를 끝내고 나와서 청바지만 전문으로 팔고 있는 매장으로 향했다. 매장에는 멋들어지게 구불구불한 파마를 하고 검은색 메탈 안경을 쓴 젊은 남자가 바쁘게 뭔가를 적고 있었다. 쇼핑몰을 찾는 소비자의 90%가 여자인데, 남자인 내가 불쑥 들어가니 약간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인터뷰 요청을 하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오래 걸리는 거 아니죠?”라며 그리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8년전 직원부터 시작해 지금은 사장이 됐다고 했다.
“요즘 장사 잘 되나요?”
“그저 그렇죠 뭐. 요즘 저가브랜드, SPA브랜드 때문에 매출 타격이 상당히 심해요.”
“초면부터 이런 말 하기는 좀 뭐하지만 잘 나갔을 때랑 비교하면 얼마나 떨어졌나요?”
“(잠시 고민하며)반 토막 났습니다.”
“아이고 저런. SPA의 저가공세를 어떻게 하죠?”
“그러게 말이에요. 가격으로 상대 할 수는 없고요. 우리는 제품의 질로 상대해야 합니다. 그들이 펴는 저가공세에 맞불을 놓으면 결국 우리만 당하죠.” 남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데 솔직히 소비자는 같은 디자인에 같은 가격이면 SPA브랜드를 선호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맞아요. 그래도 SPA브랜드는 우리 제품에 비교해서 품질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죠. 몇 번 입거나 빨아보면 실밥이 터지거나 목이 늘어나요.” 그는 옷의 질에는 자신 있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일반소비자도 여기서 청바지 살 수 있나요?”
“안 팔아요.”
“왜 안 팔아요? 다른 데는 최소 2장이상을 사면 판다고 하거나 말만 잘하면 1장도 판다고 하던데.”
“그건 거기 사정이죠. 우리가 도매를 하는 이유는 단가의 마진을 줄이고 많이 팔아서 이익을 내려고 하는 건데 1~2장 팔아서는 답이 안 나와요.” 남자사장은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다른 데는 몇 개라도 팔겠다는 정책인데 여기는 힘들다 해도 먹고 살만 한가 보네요. 많이 팔면 한번에 얼마까지 팔아봤나요?”
“음…가만 있어 보자. 한번에 중국소매상에게 500장까지 팔아 본 것 같은데. 지금 동대문은 중국사람 없으면 진짜 문닫아야 해요.”
더 묻고 싶었으나 남자사장이 ‘언제까지 물어볼 거냐’라는 표정을 하는 것 같았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끝으로 재빨리 매장을 빠져나왔다.
시원시원한 30대 여사장 이야기
“뭐 필요 한 거 있으세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미모의 여성이 먼저 나를 반겼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잠깐 취재 좀 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동대문도매시장 얘기를 사람들에게 좀 알리려고요”
“내가 여기서 장사한 게 5~6년 됐는데 댁 같은 분 많이 봤어요. 뭐든 물어보세요. 내 시원하게 대답해드릴 테니.”
“장사는 어때요? 오늘 많이 팔았어요?”
“문 연지 얼마 됐다고 많이 팔아요. 몇 시 인지 시계 좀 봐봐요.” 여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여기도 중국사람이 주 고객인가요? 여기 오기 전에 다른 데 들려서 물어보니 거의 모든 고객이 중국사람이라고 그러던데요.”
“아주 잘 아시네. 요즘 동대문 대부분이 중국사람 없으면 장사 못해요.”
“혹시 중국어 할 줄 알아요? 중국손님이 많으면 기본적으로 중국어를 좀 해야 하잖아요.”
“아주 조금은 할 줄 알죠. 그런데 장사하는데 사람들이 눈빛만 봐도 딱 알지. 뭐 중국어를 유창하게 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중국에서 한국으로 물건을 사러 왔으면 자기네가 한국어를 해야지. 보통 중국사람들이 ‘얼마에요’, ‘몇 개 주세요’이런 말은 다해요. 가격은 계산기로 찍어서 보내주면 되고. 급할 데는 뭐 영어도 쓰고요.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말 못해서 장사 못하는 사람 없어요. 그리고 요즘은 대부분 중국어가 가능한 직원을 뽑아요. 여기 옆에 있는 친구도 한국사람인데 중국어를 잘 하고요.”
“그럼 옛날에 SPA브랜드 없고 동대문 잘 나갈 때는 어땠어요?”
“(회상하며)그때가 좋았지. 아마 그때는 내수가 반은 됐던 것 같은데. 지금은 70~80%가 중국으로 나가는 물건이에요. 나도 여기서 6년전에 일반점원으로 시작해 지금은 내 가게를 하고 있지만 나보다 훨씬 전에 했던 분들은 여기서 돈 많이 벌고 다 나갔다고 그러더라고요. 근데 지금은 그런 점포가 있을지 모르겠네.”
“점원이었을 때보다 돈은 더 버세요?”
“그때보다는 더 낫지. 점원보다 못 벌면 어떻게 해요? 그런데 신경 쓰이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돈은 지금 더 벌어도 마음은 그때가 더 편해요.”
“소매보다 얼마나 싼가요? ”
“소매가 얼마에 파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만약 여기서 1만원에 가져가서 수완만 좋은면 3만원에도 팔 수 있는거고. 그런데 보통 80%정도 더 붙여서 팔더라고요. 옛날에야 2배, 3배까지 받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인터넷때문에 그렇게 못해요.”
“그렇군요. 도매상은 일단 물건을 대량 생산하는데 재고가 쌓이면 어떡해요?”
“하하 내가 이 밥이 6년인데 딱 보면 이게 남을지 안 남을지 다 알죠. 그래도 안 팔리고 남는 게 있으면 잘 아는 소매상에게 거의 원가로 줘요. 어차피 우리도 못 팔면 손해니까. 소매상도 거의 원가에 가져가서 제값 받고 팔면 완전 남는 거니까 그쪽도 좋고. 원래 장사가 다 그런 거죠”
“그럼 여기는 한 장씩도 팔아요? 다른 데는 2장 이상이거나 아니면 아예 10장 이상은 사야 판다고 하던데.”
“아이고 우리는 그런 거 없이 1장이든 2장이든 다 팔아요. 옛날에 좋았을 때나 그렇게 했지. 지금 같은 불경기에는 그렇게 못해요. 1장씩이라도 좋으니 많이만 팔았으면 좋겠네(웃음).”
*동대문도매시장 상인 일과
8:00pm: 매장 오픈. 생산 공장에서 생산량 확인.
9:00pm: 본격적으로 장사 시작.
2:00am: 소매상과의 거래가 거의 끝나면 주문 받은 상품포장.
3:00am: 각 지방화물상품 송부 및 다음 날 상품 생산계획.
5:00am: 디자인연구 및 남은 업무마무리.
6:00~7:00am: 영업종료.
8:00am: 동대문종합시장으로 이동해 원단 수배, 발주, 신상품조사.
10:00am: 공장에서 상품 생산 지시.
12:00~1:00pm: 일과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