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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서울패션위크’를 재조명하다

서울패션위크(SFW)를 국제적인 패션 비즈니스 교류의 장(場)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정구호 총감독,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의 1년 장기 프로젝트는 어땠을까?

정구호 휠라 코리아(FILA KOREA) 부사장이 총감독을 맡으며 새로운 도약을 약속했던 2016 F/W 헤라 서울패션위크(HERA SFW, 이하 서울패션위크)가 복잡한 여정을 끝냈다. 정구호 총감독은 지난 시즌부터 대중들을 위함이 아닌 바이어가 중심이 된 행사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해왔다. 이를 두고 치열한 갑론을박이 펼쳐지기도 했으나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반기를 들었던 이들조차 한발 뒤로 물러서며 섣부른 판단을 자제해왔다.

정구호 총감독이 지휘를 맡은 서울패션위크는 첫 번째로 타이틀 스폰서 체재를 도입해 아모레퍼시픽의 헤라(HERA)와 공식 후원 계약을 맺고 ‘헤라 서울패션위크’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세계 4대 패션위크를 벤치마킹해 세계 5대 패션위크로 거듭나기 위한 야심찬 아이디어였다. 또한 정구호 총감독은 B.I(Brand Identity)도 재정비했다. 서울시를 형상화한 기존 B.I에서 패션을 상징하는 실과 바늘로 SFW(Seoul Fashion Week)를 자유로운 선과 면으로 패션 디자이너들의 무한한 창의성을 표현함과 동시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를 유기적인 건축형태로 묘사했다. 특히 블루 컬러의 B.I를 선보였던 지난 시즌과 달리 이번 시즌에는 레드 컬러의 B.I를 선보이며 S/S 시즌과 F/W 시즌의 성격을 명확히 구분했다.

서울패션위크 운영 방식에도 새 바람이 불었다. 이번 시즌부터 서울컬렉션과 제너레이션 넥스트(Generation Next, 이하 GN)가 분리되면서 GN은 실질적인 비즈니스가 이뤄지는 ‘트레이드 쇼’ 형태로 변모했다. 이를 신진 디자이너에 대한 지원 중단으로 받아들인 일부 디자이너들은 반기를 들기도 했지만 정구호 총감독은 의지를 굽히지 않고 ‘인큐베이팅’이 아닌 ‘비즈니스’를 선택했다. 결론적으로 서울컬렉션과 GN의 경계가 애매해졌다는 평이 중론이다. 원래 서울컬렉션은 사업자 등록 3년 이상 중견 디자이너에게, GN은 3년 이하 신진 디자이너에게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번 시즌부터 서울컬렉션의 연차 제한이 없어지며 갓 데뷔한 신진 디자이너가 서울컬렉션에 오르고 론칭 3년을 넘긴 디자이너는 GN에 출전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물론 지난 시즌부터 GN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던 것은 사실이다. 대중들에게 ‘맨투맨’으로 인기가 있을지 몰라도 베테랑 디자이너들과 나란히 하기에는 실력이 한참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번 트레이드 쇼의 장소는 DDP가 아닌 문래동에 위치한 대선제분공장(이하 대선제분)에서 진행됐다. 대선제분은 미래적이고 현대적인 DDP의 외관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곳으로 서울 외곽의 버려진 장소를 예술 공간으로 재창조, 활용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특히 해외의 경우 버려지고 다듬어지지 않은 대안 공간에서 트레이드 쇼를 진행하곤 한다. 세계 3대 패션 페어로 알려진 베를린의 브레드&버터(Bread&Butter)는 폐 공항인 템펠호프(Tempellhof)를 선택, 매 시즌 행사를 열고 있다. 현재 템펠호프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됨과 동시에 대규모 박람회가 열리는 장소로 다시 태어났다. 정구호 총감독의 의도야 어찌 됐든 일각에서는 장소 선택과 거리 조절에 실패했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특히 사창가가 밀집한 주변 상권 때문에 사전답사가 철저히 이뤄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또 DDP와 대선제분의 거리가 멀어 행사 집중도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서울패션위크 기간 동안 DDP 내부에서는 셔틀버스에 대한 안내 및 정보 부족으로 불편함을 겪었다는 이들도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패션위크 마지막 날인 3월 26일에는 대선제분에서 화재가 나기도 했다. 내부 창고 옆 쓰레기 야적장에서 발생해 20여 분 후 진화됐으며 연기를 마신 2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행사장에 있던 60여 명이 긴급 대피를 하는 등 역대 서울패션위크 이래 처음으로 화재 사고로 막을 내린 유일한 행사로 기록됐다.

서울패션위크

정구호 총감독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해외 바이어 및 프레스 초청은 목표치에 근접한 듯 보였다. 물론 패션쇼 방문을 약속했던 이들이 참석하지 않아 빈 좌석이 발생하는 등 디자이너들이 골머리를 앓긴 했지만 말이다. 사실 좌석 문제는 지난 시즌부터 꾸준히 거론됐었다. 익명의 중견 디자이너는 “해외 바이어 명단을 보내주면서 맨 앞줄의 좌석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그들이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자리를 비워둔다. 하지만 패션쇼 당일이 되면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텅 빈 좌석 그대로 패션쇼를 진행했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패션위크 둘째 날인 3월 23일에는 400여 명의 서울 시민들이 추위에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있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엠티콜렉션(대표 양지해)의 메트로시티(METROCITY) 패션쇼에 샤넬 최연소 모델로 유명한 바바라 팔빈(Barbara Palvin)이 오른다는 소식으로 다수의 관객들이 몰리면서 준비된 1000석이 일찌감치 마감됐었다. 하지만 DDP 내부에서는 400여 명의 서울 시민들이 티켓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추위에 떨다 입장도 못하고 집으로 되돌아갔다. 당시 발부된 티켓에는 선착순으로 입장 가능하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었다. 익명의 신진 디자이너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중견 디자이너와 대형 패션 기업의 경우 700석이 넘는 좌석을 채우는 것이 어렵지 않을 수 있지만 신진 디자이너들에게는 벅찬 것이 사실이다. DDP 내부에서는 패션쇼 티켓을 구하지 못해 서성거리는 이들이 많다. 물론 바이어도 중요하지만 일반인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 발전한다면 좌석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패션위크는 매 시즌 서울시로부터 수십억 원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 돈은 모두 서울 시민들이 낸 세금이다. 정구호 총감독은 “아무에게나 쇼를 보여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서울패션위크가 서울 시민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패션 디자이너와 바이어들을 위한 행사로 가려면 서울시에서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세계 4대 패션위크 역시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있다. 철저히 민간 기업들의 협찬을 받아 운영 중이다. 서울패션위크가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깊이 있는 고민을 해봐야 할 시점이다.

지난해 패션계 핫이슈로 떠올랐던 ‘열정페이’가 다시금 문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패션위크가 참가 신청을 받으면서 근로계약서와 복지제도를 갖춘 이들에게 가점을 줘 열정페이로 물의를 일으킨 디자이너의 참가를 제한하겠다던 약속이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패션위크 참가 업체 28곳 중 근로계약서, 노조 설립, 복지제도 여부에 따라 한 개 항목이라도 가점을 받은 곳이 11곳(약 39.2%)에 이르지만 여전히 실효성에 대한 의심은 가시질 않는다. 현행 가점 제도는 열정페이 어시스턴트 10명을 쓰더라도 정규직 직원 한 명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기만 한다면 가점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참가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열정페이 근로자를 다수 채용하면서도 얼마든지 가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는 셈이다. 더욱이 서울패션위크는 열정페이로 물의를 일으킨 디자이너들의 참가를 모두 제한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어떤 이가 그랬는지에 대한 조사도 진행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한 리스트도 없었다.

이렇게 악순환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보니 서울패션위크에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올해는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대표 박동문, 이하 코오롱)의 슈콤마보니(SUECOMMA BONNIE)와 럭키슈에뜨(Lucky Chouette), 신원(대표 박성철)의 반하트 디 알바자(VanHart di Albazar) 등 다수의 기업들이 줄줄이 불참을 선언했다. 또한 건대 커먼그라운드, 패션코드 등 독자적으로 패션쇼를 진행하는 이른바 ‘탈 서울패션위크’도 눈에 띄게 늘었다. 서울패션위크가 틀에 박힌 아날로그처럼 여겨진다거나 혹은 과거에 비해 퀄리티가 현저히 낮아졌고, 참가 디자이너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또한 가장 큰 궁극적인 요인은 서울패션위크가 유일한 홍보 수단이 아닐뿐더러 트렌드와도 맞기 않기 때문이다. 패션위크는 통상적으로 매년 2, 3월에 가을과 겨울의 옷을 8, 9월에는 이듬해 봄과 여름의 옷을 선보인다. 다음 시즌이 발표되기 전까지 바이어는 옷을 구매하고 각종 미디어는 관련 기사를 준비한다. 여기서 문제점은 시의성이 중요한 패션계에서 시의성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고질적인 카피 문제도 패션위크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정작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디자인을 시장에 내놓기도 전에 카피 제품이 먼저 깔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버버리(BURBERRY), 톰 포드(Tom Ford) 등은 이러한 이유로 뉴욕패션위크(NYFW) 불참을 선언한 바 있다.

스티브J&요니P의 세컨드 브랜드인 SJYP가 이번 서울패션위크에서 F/W 시즌의 옷이 아닌 S/S 시즌의 옷을 선보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배승연(요니P) 디자이너는 “패션쇼를 진행하고 나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옷 사진이 곳곳에 퍼진다. 대체적으로 이 옷들은 5~6개월이 지난 뒤에서야 시장에 나오게 된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그 의상이 이미 뒤처진 옷으로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의 중견 디자이너는 “돈 많은 디자이너들의 배부른 소리다. 당장 판매가 가능한 옷들을 내놓는다는 건 미리 옷을 제작한다는 이야긴데 그렇다면 옷이 팔리지 않았을 경우의 리스크는 누가 가져가는가? 소규모로 돌아가는 디자이너 브랜드 특성상 한 시즌을 미리 선보이고 주문을 받은 후 적당량을 제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물론 카피 문제 때문에 속상하기도 하지만 말이다”고 반문했다.

서울패션위크는 K-패션을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행사로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주의 깊게 바라보는 행사여야 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참가 디자이너와의 소통과 더불어 행정적인 개선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아직도 갈 길이 멀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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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나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기는 패션 에디터(__*) 1:1 신청 환영 press@fashion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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