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끌릴 것 같은 과장된 소매, 여러 벌의 청바지를 해체한 뒤 다시 이어 붙여 만든 누더기 바지, 우스꽝스러운 어깨 라인,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부터 인디 브랜드까지 너도 나도 이러한 스타일을 쫓기 시작한 것은 베트멍(Vetments)이 출현하면서부터다.
현재 프랑스 패션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베트멍’이다. 프랑스어로 옷(Clothes)를 뜻하는 베트멍은 뎀나 즈바살리아(Demna Gvasalia)를 중심으로 패션에 대한 창의적인 심미안과 비전을 공유하는 7명의 디자이너가 의기투합해 만든 브랜드다.
베트멍은 2014년에 론칭해 이제 겨우 3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은 물론 놀라운 속도로 하나의 문화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언더그라운드와 럭셔리를 결합해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옷, 그 자체에 본질을 두며 해체와 재가공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개성 넘치는 옷을 만들어낸다.
베트멍을 이끄는 뎀나 즈바살리아는 세계 3대 패션 스쿨로 꼽히는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Antwerp Royal Academy of Fine Arts) 졸업 후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Maison Martin Margiela), 루이비통(Louis Vuitton) 등의 패션 하우스를 거치며 창의적인 능력을 쌓아왔다. 현재 뎀나 즈바살리아는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도 활동 중이다. 뎀나 즈바살리아 외 다른 디자이너들은 언론에 노출되진 않았지만 모두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등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베트멍은 2014 F/W 시즌에 첫 컬렉션을 발표하자마자 스타덤에 올랐다. 그들이 선보인 ‘리사이클링 청바지’는 온∙오프라인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이 청바지는 중고 시장에서 구매한 청바지들을 해체한 후 재조합해 만든 제품이었다. 특히 비대칭적이고 기하학적인 밑단 디자인은 해외 유명 셀러브리티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패션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요소가 됐다. 프랑수아 앙리 피노(Francois Henri Pinault) 케링그룹 CEO가 베트멍을 강력한 ‘포스(Force)’라고 표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베트멍은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이후 최고의 신비주의 브랜드’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뎀나 즈바살리아는 “우리는 마르지엘라와 다르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자신은 패션 디자이너라기보다 제품 디자이너에 가깝다고 말한다. 개념적인 패션을 창조하는 게 아닌 실생활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사람이며 이것이 마르지엘라와 가장 큰 차별화된 점이라는 것이다.
현재 베트멍은 패션 하우스의 길고 긴 집권에 반하는 스트리트와 컨템포러리의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뎀나 즈바살리아는 “우리의 작업은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받거나 토털룩이 아닌 솔로로 한 피스 씩 구상돼 태어난다. 일반 브랜드처럼 시즌에 맞추거나 테마를 정하는 것도 피한다. 우리의 컬렉션은 여성들이 사자마자 바로 입고 거리로 나갈 수 있는 것에 맞춰져 있다”라며 “마켓의 요구에 따라가는 것이 아닌 우리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만든다”고 말했다. 통상적인 타협을 거부하고 그들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베트멍의 ‘내일’이 궁금해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