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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히잡’ 패션 외교 정책 갑론을박

박근혜 대통령 ‘히잡’ 패션 외교 정책 갑론을박 | 1

박근혜 대통령이 이란 국빈 방문에서 패션 외교 정책의 일환으로 착용한 ‘루사리’를 놓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현재 이란을 찾은 최초의 비(非)이슬람권 여성 정상이 여성 인권 억압의 상징물인 루사리를 착용했다는 점에서 굴욕적인 외교라는 비판과 패션을 통해 상대국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보여준 외교의 좋은 예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962년 수교 이래 장장 54년 만인 지난 1일 오후 이란의 수도 테헤란(Teheran)을 방문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이란의 땅을 밟는 순간부터 루사리를 착용했다. 루사리는 페르시아어로 ‘머리에 쓰는 스카프’를 의미하며 여성들이 머리와 목 등을 가리기 위해 착용하는 히잡(Hijob)의 일종이다.

히잡의 유래는 이슬람교가 발흥한 7세기 이전 아랍 사회에서 비롯된다. 당시 아랍에서는 유목민들 간의 크고 작은 전쟁이 잦았다. 전쟁이 일어날 때면 여성들이 성적 도구로 유린당하거나 노예로 팔려나가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이에 아랍 사회는 여성 보호의 필요성이 절실해졌고 최소한의 방편으로 의상을 택했다. 여성의 성적 매력이 드러나지 않도록 몸을 가려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란은 이슬람 혁명(1979년) 이듬해인 1980년부터 이슬람 율법에 따라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했을 뿐만 아니라 종교가 다른 여성들에게까지 히잡 착용을 엄격하게 강요해오고 있다. 이를 두고 서구 사회는 히잡은 여성 인권을 억압하는 행위라며 비판했고 이슬람 국가들은 여성 보호 차원이라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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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이 루사리를 착용한 이유는 이란 국빈 방문이 지난 1월 국제사회 대(對)이란 제재가 해제된 데 따른 양국 간 경제 협력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상대국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패션 외교 정책으로 펼침으로써 자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겠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은 하산 로하니(Hassan Rouhani) 대통령과의 한∙이란 정상회담 및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Ayatollah Ali Khamenei) 최고지도자 면담은 물론 한국문화체험전 참관, 한∙이란 비즈니스 포럼, 동포 대표 접견 등 모든 일정에서 루사리를 착용했다.

이란의 국기색을 상징하는 의상을 입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란에 도착한 첫날 연두색 의상을, 한∙이란 정상회담 등이 있었던 이튿날에는 분홍색 의상을 입었다. 마지막 날에는 한∙이란 비즈니스 포럼 등에서 흰색 의상을 착용했다. 박 대통령이 연두색, 분홍색, 흰색 의상을 차례대로 입은 것은 이란 국기 색상인 녹색, 붉은색, 흰색에 맞춘 선택이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해외 순방 때마다 상대국의 국기색이나 해당국의 국민 정서를 고려한 패션 외교 정책을 펼치기로 유명하다. 2014년 1월 인도 방문 때 주황색, 흰색, 녹색 총 3색으로 구성된 인도 국기색을 상징하는 한복을 입고 나왔던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박 대통령은 인도 방문 첫날 동포 간담회에서 주황색 저고리와 녹색 치마로 된 한복을 착용했다. 2013년 6월 중국 방문에서는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주최한 국빈 만찬에 참석하면서 저고리와 치마 모두 중국인이 좋아하는 황금빛에 가까운 노란색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박 대통령의 루사리 착용은 ‘존중의 의미’에 가까웠을 수도 있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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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전 사회적으로 논란이 끊이질 않는 히잡을 아무렇지 않게 착용했다는 점에서 다소 무리수였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히잡은 이슬람 사회 내부에서도 말이 많다. 쿠웨이트의 경우 2008년 여성 장관 2명이 취임 선서 때 히잡 착용을 거부했다가 국회의원들의 거센 반발을 산 일이 있었다. 2010년에는 쿠웨이트 사상 첫 여성 의원인 롤라 다쉬티가 히잡을 벗은 채 의회에 나타나 비판과 옹호를 동시에 받은 바 있다. 롤라 다쉬티는 히잡 착용을 강요하는 건 남녀평등과 세속주의에 반한다는 판단 아래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도 마찬가지다. 터키는 인구의 99%가 무슬림이지만 공직자와 대학 내 히잡 착용을 오랫동안 금지해오고 있다. 국부로 불리는 케말 아타튀르크(Kemal Ataturk)가 1923년 터키 공화국에 초대 대통령으로 오르면서 천명한 세속주의 원칙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터키 사회 내부에서는 세속주의 원칙과 종교적 신념이 잦은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히잡으로 상징되는 여성 보호 의식이 억압과 속박으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여성이 운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외출할 때에는 남편이나 아버지 등 남성 보호자를 동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각종 금기 속에 숨죽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도 히잡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 인구가 살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 2010년부터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착용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디체 카예크(Dice Kayek) 창립자 에체 에즈(Ece Ege)는 “지금은 히잡에 대한 논쟁의 종지부를 찍어야 할 시점이다. 히잡을 착용한 여성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삶과 종교, 문화의 또 다른 양상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는 누구든 공적인 영역에서 종교의 영향을 철저히 배제하도록 한 공화국 헌법의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고 이슬람 사회는 종교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라고 비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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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히잡을 둘러싼 논쟁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예민하다. 그러나 히잡을 단순히 여성 억압의 상징물로 단정 짓는 것은 오랫동안 이슬람계를 차별해온 서구 사회의 시선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현재 히잡은 이슬람 사회 내부에서는 여성의 신체를 구속하는 장치로 작용하지만 서구 사회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유럽에서의 히잡은 여성 스스로 여성 억압을 긍정하는 표시가 아닌 이슬람계를 차별하는 비이슬람계 시선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볼 수도 있다. 이외에도 물론 개인의 취향이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자진해서 착용하는 이들도 있다.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미국 영부인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도 2010년 인도네시아 방문 때 히잡을 착용했다.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전 국무장관도 2009년 파키스탄을 방문하면서 히잡을 착용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히잡 착용은 이들과 의미가 다르다. 이슬람계가 아닌 한 국가의 여성 정상이 히잡을 쓰고 이란을 방문한 것은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하게 결정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아쉬운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듯하다. 상대국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고려했다는 정부의 입장은 박 대통령이 인도네시아와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을 때 히잡을 쓰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설득력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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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나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기는 패션 에디터(__*) 1:1 신청 환영 press@fashion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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