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한복이 추구한 40년의 미학, ‘바람, 바램’

한복의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영희 디자이너가 오는 23일부터 내달 9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알림 2관 Gate A3 1층에서 <이영희 展 – 바람, 바램>을 개최한다.

# 한복의 보편적인 아름다움“나는 ‘아름다움’이 지닌 보편성과 공감성의 힘을 믿는다. 한국 여인에게 아름다운 옷은 세상 모든 여인들에게도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 이영희 디자이너

이영희 디자이너는 한복이 단순히 우리나라 전통 의상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의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주인공이다. 그녀는 지난 1993년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파리 프레타 포르테(Pret-A-Porter)에 참여했으며, 2010년에는 파리 오트 쿠튀르 무대에 한복을 올리며 명실공히 ‘한복의 세계화’를 선도한 디자이너다.

이번에 개최되는 <이영희 展 – 바람, 바램>은 나이 마흔에 시작된 이영희의 한복 디자인 4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여정이자 한복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이다. 특히 그녀가 모은 진귀한 한복 사료를 비롯해 한복의 현대화, 세계화를 제시한 대표적인 작품이 컨템포러리 아트 워크로 연출돼 한복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 이영희의 한복, 왜 ‘바람의 옷’이 됐을까?“우리 생활 속에 한복이 베어 들게 하기 위해선 불필요한 장식부터 과감히 없애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먼저 저고리의 고름을 떼어버렸다” – 이영희 디자이너

한복쟁이 이영희가 한복의 실용화를 위해 과감히 저고리의 고름을 떼어버렸다면,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영희는 아예 저고리를 생략한 파격적인 한복을 선보였다. 지난 1976년 한복을 짓기 시작한 후 40년간 수많은 옷을 디자인했지만, 지금까지 대중의 뇌리에 깊게 남아 있는 옷은 저고리 없는 한복 치마, 즉 ‘바람의 옷’이다.

1994년 파리 컬렉션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저고리 없는 한복 치마는 ‘가장 모던하지만 가장 한국적인 옷’이며,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변화무쌍하고 무궁무진하게 보여주는 옷’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당시 프랑스 신문사 ‘르몽드’의 수석 기자 로랑스 베나임은 이영희의 작품을 보고 ‘바람을 담아낸 듯 자유와 기품을 한 데 모은 옷’이라 평하면서 ‘바람의 옷’이라 명명했다.

한없이 다양한 형태와 볼륨은 지닌 옷으로 변화하지만, 언제든 간단한 평면으로 회귀할 수 있는 한복 치마, 바람의 옷. 이영희 디자이너의 관점에서는 전통을 버린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한복이 지닌 고유한 미학을 직관적으로 보여준 최고의 디자인이었다.

<이영희 展 – 바람, 바램>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지난 40년간 이영희가 추구해온 패션으로서의 한복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저고리가 없는 한복으로서 강렬한 이미지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 한복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에게는 세계적인 패션으로 거듭나는 한국의 진화 과정을 짚어볼 수 있는 계기다.

# 2차원 평면이 선사하는 새로운 시선, ‘한복을 한복 안에서 만나다’“전통을 버리고 전통을 얻는다. 한없이 변화할 수 있지만 언제든 가장 간단한 평면으로 돌아갈 수 있는 옷. 이런 생명력이 있어서 나는 바람의 옷을 사랑한다” – 이영희 디자이너

<이영희 展 – 바람, 바램>은 한복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전시 디자인으로 한층 풍성한 볼거리와 영감을 선사한다. 특히 전시장 자체를 한복과 같은 평면 구조로 구성해 마치 실제 한복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새로운 관점과 경험을 제공한다.

한복이 서양 의복과 차별을 이루는 것은 2차원 평면 구조인 점이다. 옷을 착용하면 자연스럽게 공간이 생기면서 여유가 있는 구조로 변화하는데 이는 ‘옷이 몸에 붙으면 복이 들어갈 틈이 없다’라는 옛날에서 비롯한 한복의 중요한 요소다.

이번 전시장은 이러한 원리를 통해 천으로 겹겹이 벽을 이루는 공간이 형성되며, 관람객이 그 사이로 진입하면 마치 한복 속에 생긴 여유를 자유롭게 유영하듯 아름다움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또한 벽을 따라 걷다 마주치는 넓은 마당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공간이다. 바람의 옷을 입고 펼쳐지는 퍼포먼스, 이영희 디자이너의 한복 강연, 한복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 한복의 근원을 찾다“과거를 모르면 현재가 없고, 조상의 문화를 버리면 현재의 문화도 없다. 전통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전통을 알면 내가 즐거워진다” – 이영희 디자이너

한복의 아름다움을 보편적인 패션으로 전환한 이영희 디자이너. 그녀는 발전적인 미래란 과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과정이라 강조한다. 그만큼 한복 디자인에 있어서 우선시 되는 것은 전통 한복의 소재, 염색 기법, 형태에 대한 연구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진행된 색다른 시도는 이영희 디자이너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이자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한산모시’가 소개된다. 전통 컬렉션의 주인공인 한산모시는 특유의 빛깔과 텍스처 등이 돋보이는 전통 한복과 오트 쿠튀르 드레스 디자인 작품이 아트 인스톨레이션을 통해 드라마틱한 감동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이영희의 전통 색상과 염색에 대한 탐구와 열정은 ‘이영희의 색’으로 정의되는 색깔과 배색이 들어간 디자인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전통 한복에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전통 염색에서 발견한 회색의 아름다움은 쪽빛과 먹자주 색깔과 짝을 이루고 있으며, 그녀가 만든 프레타 포르테 기성복을 비롯해 오트 쿠튀르 드레스까지 물들이며 전통의 현대화가 무엇인지를 소개한다.특히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영희 디자이너의 정점이자 터닝 포인트인 마스터피스 20점을 선별해 특별한 디스플레이로 감동을 더할 계획이다. 각 의상은 실제 해당 옷을 입은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몸짓이 담긴 영상과 미러 박스에 설치됨으로써 한복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이 외에도 이영희 디자이너는 디자인의 영감으로서 자신이 수집한 조각보와 비녀, 족두리, 버선, 꽃신과 같은 전통 유물을 공개한다. 그녀에게 조각보는 색과 패턴 등 다양한 영감을 제공하는 원천으로서 관람객에게 드라마틱한 비주얼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영희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로서 ‘바램’이 있다면 자신의 도전이 개인의 도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고 혹은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라며 “우리의 전통 미학이 새로운 손길로 재탄생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기서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은 전시를 관람하는 관객들이 ‘단 한 벌의 의상에서라도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겸손한 마음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