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버지의 낡은 구두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녁 시간.
지하철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사회 초년생들을 비롯해 연세를 지긋이 드신 부모님 세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있다.
지하철에서 가만히 사람들을 쳐다보다 문득 가슴이 먹먹해진다. 출입문에 기대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뻘 정도의 남성 때문이었다. 언제 구두에 광을 냈는지도 모를 정도로 낡고 낡은 구두. 그 옆에 휴대폰 게임에 정신 팔려있는 20대 청년의 고가 운동화.
영화, 드라마 속에서 5060세대들의 옷차림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물론 ‘회장님’, ‘사모님’의 경우를 빼고 말이다. 현실적인 묘사가 대중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에 부모님 세대는 평범하고, 때로는 허름한 차림으로 등장한다. 별다른 생각 없이 보던 드라마 속에서 부모님의 진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낡은 신발을 신으면 어때. 어차피 다 늙은 아저씨, 아줌만데. 아직 5년은 더 신을 수 있어”
“유행? 그게 뭐야. 따뜻하고 깨끗하기만 하면 장땡이지 뭐”
오래된 바지에 낡아빠진 구두, 살짝 넉넉한 품의 셔츠, 언제 유행했는지도 알 수 없는 오묘한 가방. 상상만 해도 얼마나 보기 싫은 모습인가? 만약에 나라면, 이렇게 입고 사람들이 많은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었을까? 아니,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5060세대의 모습이다. 그들의 옷장엔 시장에서 싸게 구입한 바지, 유행이 지났다고 입지 않는 자녀들의 옷가지, 언젠가 입을 날이 올지도 몰라 버리지 못한 재킷, 오래된 신발이 자리하고 있다.
“엄마는, 아빠는 괜찮아. 너희들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이보다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경기 침체로 인해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는 물가와 비싼 대학 등록금, 멈춰버린 임금, 막막한 노후 대책 등 돈과 연관된 악조건 속에서 5060세대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입고 먹는 것을 줄여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해주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내 친구들은 다 가지고 있단 말이야”
“요즘에 누가 이런 걸 입어? 그냥 새로 사줘”
“아 이게 뭐가 비싸다고 난리야?”
또한 사회 깊숙이 박혀 있는 외모지상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우리의 마음도, 부모도 모두 병들고 있다. 유행에 뒤처지기라도 한다면 ‘옷을 못 입는 사람’ 혹은 ‘같이 다니기 창피한 사람’ 등의 낙인으로 젊은 세대들의 마음을 난도질하는가 하면, 자신이 먹고 입는 것을 줄여가며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들만 해주려는 부모의 마음까지.
한가지 예로 몇 년 전부터 중고생들을 비롯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100만 원이 훌쩍 넘는 고가의 패딩 점퍼가 대중적인 아이템으로 인식된 상황을 떠올려보자. ‘너도 입으니까 나도 입는다’라는 식의 모방심리를 넘어 고가의 제품을 입음으로써 상대보다 우위에 있다는 우월감을 표출하려는 성향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덕분에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등골을 내다 받치는 격이 됐다. 정작 당신들은 입어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한 옷을 혹시 내 자식들이 밖에서 기죽지 않을까 염려돼 없는 형편에도 선뜻 지갑을 열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혹은 예쁘니까, 유행하니까, 사고 싶으니까 등의 이유 대신에 소비를 하는 목적에 대해 분명히 정리를 해둘 필요가 있다. 또한 내가 사려는 물건이 정말로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뒤에 숨겨진 부모님들의 애환과 희생이 뒤따르고 있다는 것을 한 번쯤은 생각해 봤는지를 말이다.
받쳐 입을 옷이 없어 아직 게시도 못한 스커트, 유행이 지나 더 이상 입을 수 없어 구석에 박아놓은 원피스, 삐까뻔쩍한 브랜드 운동화, 며칠 전에 길에서 구입한 새 블라우스… 이것이 당신의 옷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