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브랜드와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이하 인디∙신진 브랜드)가 정체된 패션업계의 ‘뉴 키워드(New Keyword)’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패션업계는 글로벌 SPA 브랜드와 해외 럭셔리 브랜드로 양분화된 모습을 띄고 있다. 이에 패션업계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독특한 색깔을 가진 인디∙신진 브랜드와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소비자들을 현혹하기에 나섰다.
이는 국내 패션시장이 전반적인 경기 침체의 여파로 전년대비 1.8% 성장률을 보이는데 그칠 것으로 전망되자 인디∙신진 브랜드를 통해 ‘차별화된 쇼핑 공간’을 만들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2013년 롯데백화점 약 4개, 현대백화점 약 3개, 신세계백화점 약 3개였던 인디∙신진 브랜드의 비중이 2015년에는 롯데백화점 약 13개, 현대백화점 약 16개, 신세계백화점 약 21개로 약 79% 급증했다. (본점 기준)
백화점 관계자는 “과거에는 백화점이 유명 패션 브랜드의 성역으로 여겨졌다”라며 “하지만 최근에는 인디∙신진 브랜드의 독특한 스타일이 입점되면서 백화점을 찾는 젊은 소비자들이 급격히 증가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상황은 획일화된 상품 구성과 평범한 디자인에 지루함을 느낀 소비자들의 마음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라며 “앞으로 인디∙신진 브랜드의 비중을 더욱 늘려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 대형 패션 기업과 썸타는 인디∙신진 브랜드
현재 국내 패션시장은 여성복∙남성복∙아동복의 비중이 점진적으로 축소되고, 캐주얼∙스트리트∙컨템포러리의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형 패션 기업들은 기존의 대중적이고 식상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젊고 트렌디한 감각을 어필하기 위해 인디∙신진 브랜드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전개하는 여성 캐주얼 브랜드 지컷(g-cut)은 조성준, 이선율 디자이너와 손잡고 액세서리 라인 강화에 나섰다.
김주현 지컷 마케팅팀 과장은 “이번 협업을 위해 수많은 국내외 디자이너를 물색해 왔다”라며 “수많은 디자이너 중 국내 신진 디자이너를 선택한 것은 브랜드의 기존 이미지와는 다른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입히기 위해서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협업은 신진 디자이너에게 대중화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구 제일모직)은 삼청동에 위치한 하티스트(heartist house)에서 써티마켓(30 market)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며 신진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양희준 삼성물산 패션부문 홍보마케팅팀 차장은 “하티스트는 CSR 활동(사회 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기획된 프로젝트다”라며 “이번 협업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오프라인 판로를 제공하고, 아름다운 사회적 교류를 형성하기 위해 마련됐다”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국내 패션시장에서 신진 디자이너가 스스로 오프라인 판로를 개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그러나 건강한 패션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들의 힘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이 밖에도 보끄레머천다이징이 전개하는 여성복 브랜드 올리브데올리브는 김인태 디자이너와 협업을 통해 ‘해피 플라워 프로젝트(Happy Flower Project)’를 선보였다. 또한 DFD 패션그룹의 슈즈 브랜드 슈스파(SHOESPA)는 양해일 디자이너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탄생한 ‘슈스파X해일’ 라인을 전개했다.
대형 패션 기업들이 인디∙신진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하게 된 또 다른 배경에는 동대문을 비롯해 홍대, 가로수길, 삼청동과 같은 패션의 거리에서 디자이너가 쌓아온 발 빠른 시장 대응력과 디자인에 대한 감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같은 값이면 남들과 다른 제품을 사겠다는 소비자들이 늘어나자 차별화된 전략을 통해 이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인디∙신진 브랜드는 패션 트렌드에 민감한 2030세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 패션업계와 인디∙신진 브랜드의 협력
패션업계는 인디∙신진 브랜드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자 적극적인 협력 관계를 통해 윈윈(win-win) 효과를 거두고 있다.
동대문 두타의 경우 지난해 9월 기존 60여 개의 인디∙신진 브랜드 매장을 100여 개로 대폭 늘리면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두타 관계자는 “인디∙신진 브랜드를 영입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신선하고 감각적인 패션 트렌드를 제시할 예정이다”라며 “두타에서는 모델 김원중∙박지운의 87mm, 고태용의 비욘드 클로젯, 송유진의 에스이콜와이지, 이청정의 라이 등 독특한 인디∙신진 브랜드를 만나볼 수 있다”라고 전했다.
에이랜드(ALAND)는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편집숍’이라는 슬로건 아래 새로운 유통망을 개척했다. 현재 에이랜드 매장에는 약 500여 개의 국내외 브랜드가 입점해 있으며, 이중 인디∙신진 브랜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에이랜드의 매장은 명동, 이대, 홍대, 가로수길 등 패션의 중심지라고 불리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오프라인 유통망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는 통로이자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패션협회(회장 원대연)는 지난 7월 ‘제5회 인디브랜드페어’를 개최했다. 인디브랜드페어는 디자이너와 유통업체, 패션업체 간의 수주 상담을 통한 비즈니스 전문 전시회(B2B)로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새로운 마켓 창출을 위해 기획됐다. 패션, 유통 전문 전시회 불모지였던 국내 패션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은 높으나 비즈니스 환경이 열악한 인디∙신진 브랜드를 위한 최적화된 모델로 성장하고 있다.
박지희 땅볕메들리 디자이너는 “비즈니스 환경이 열악한 인디∙신진 브랜드가 실질적으로 필요한 비즈니스 기회 및 네트워크를 제공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라며 “앞으로도 인디∙신진 브랜드를 위한 다양한 플랫폼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전했다.
이렇듯 패션업계뿐만 아니라 유통업계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디∙신진 브랜드 영입에 호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또한 인디∙신진 브랜드에서 볼 수 있는 참신하고 특이한 디자인, 다양한 소재, 흥미로운 작업 방식 등 디자이너가 가진 독특한 매력이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한성대학교 한디원 패션비즈니스학과 장수영 교수는 “대형 패션 기업과 디자이너들은 서로 잘하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라며 “패션 관련 기관은 디자이너가 좀 더 창의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는 투명한 생태계와 아낌없는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신진 디자이너의 소규모 개별 매장을 단일화해 하나의 큰 쇼룸으로 만드는 것도 해외 바이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라고 설명했다.
패션업계와 유통업계 그리고 인디∙신진 브랜드가 상생하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고수한다면 영국의 백화점 더반함(Debenhams)과 비슷한 구조의 유통 채널이 생겨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를 해본다.
더반함은 신진 디자이너 및 인디 브랜드의 제품을 직접 사입하고 판매하는 방식의 ‘하우스 오브 브랜드(House of Brand)’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소비자들에게는 다양한 범위의 제품을 공급하고, 디자이너들에게는 오프라인 확장, 인지도 형성, 매출 증대, 재고 관리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반함은 영국 리테일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으며, 인디∙신진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새로운 시도는 단순히 브랜드 중심의 위탁 판매로 운영되는 국내 리테일 시장에 큰 시사점을 남길만큼 신선한 전략이라고 본다. 국내 유통 업계도 해외 유명 백화점처럼 신진 디자이너와 공존할 수 있는 건강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