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브랜드와 해외 유명 디자이너의 디자인 카피 문제는 비일비재하다. 이들은 저작권 보호를 위해 법정 소송을 제기하는 등 강력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도용 문제를 완전히 근절하기에는 역부족이다.
# 럭셔리 브랜드 VS SPA 브랜드
실제로 지난 2007년 디자이너 안나수이(Anna Sui)가 미연방뉴욕남부지방법원에 글로벌 SPA 브랜드 포에버 21(Forever 21)을 상대로 의류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2009년 법원은 안나수이가 저작물에 대한 모든 배타적 권리와 이익을 소유하고, 포에버 21은 저작물의 제작, 판매, 수입, 수출 등의 행위를 영구적으로 중지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현재 미국에서도 디자인 저작권 혹은 상표권 침해 분쟁의 심각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뽑힌다. 또한 지난 2013년 글로벌 SPA 브랜드 자라(ZARA)는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LOUIS VUITTON)과 유사한 디자인을 선보여 도마 위에 올랐다. 루이비통의 컬렉션의 다미에 패턴과 자라의 신제품이 비슷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디자인을 비교해보면 패턴의 반복과 컬러가 유사한 것을 볼 수 있다. 글로벌 SPA 브랜드 H&M은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 겐조(KENZO)의 시그니처 캐릭터인 ‘타이거’와 흡사한 패턴의 제품을 출시해 언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또한 H&M의 티셔츠 가격은 약 46,000원(34.95 EUR)으로 겐조의 약 257,000원(195 EUR)보다 약 82%나 저렴한 가격에 판매해 겐조 소비자들의 볼멘소리가 만만치 않았다. 이처럼 브랜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 바로 디자인 표절이다.
# K-패션의 걸림돌, ‘디자인 카피’
국내의 사정도 다를 바 없다. 한류열풍의 영향으로 K-패션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자 도용에 대한 심각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내셔널 브랜드와 신진 디자이너 간의 디자인 베끼기나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 동대문에서 버젓이 판매가 되는 사례 등 고질적인 문제가 심화됐다.
일반적으로 대중성과 상품성을 고루 갖춘 디자인이 카피의 표적이 된다. 또한 소위 말해 ‘히트를 친 상품’의 경우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동대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너도 만들면 나도 만든다는 식의 무분별한 복제 행위가 K-패션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알엑스케이(대표 이경태)가 전개하는 모자 브랜드 햇츠온(Hat’s On)은 자사 제품 ‘엘스팅코(Elstinko)’를 이스디엘(대표 이성대)의 캡텐(Cap 10)이 모방한 것으로 판단해 저작권법 위반으로 형사고소를 진행했다. 그 결과 캡텐은 저작권물에 대한 판매, 수출, 수입 등 모든 권한이 박탈됐으며, 재고 상품은 모두 폐기 처리됐다.
김승환 햇츠온 마케팅 과장은 “해당 업체의 제품은 모두 폐기 처리됐으며, 저작물에 대한 제작, 판매, 수출, 수입 등의 행위가 금지됐다”라며 “앞으로도 디자인 카피 문제가 발생한다면 법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라고 전했다. 지난달 29일에는 배우 윤은혜가 중국 동방위성 TV ‘여신의 패션’에서 선보인 의상이 아르케 2015 F/W 컬렉션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두 제품 모두 화이트 재킷이며, 양팔 부분에 화려한 러플 디테일이 적용돼 유사한 형태를 띄고 있다.
윤춘호 디자이너는 “코트라는 아이템이 베이스가 되었다는 점, 오버사이즈 핏의 코트 실루엣이 같다는 점, 프릴의 형태, 볼륨, 길이, 소매에 프릴이 부착된 위치, 어깨 패턴이 드롭되는 형태 등이 두 의상에 똑같이 나타난다면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옷에서 디자인 요소를 찾으라고 하면 보통 클래식 수트와 코트가 아닌 이상 싱글과 더블의 여밈 형태로 디자인적 요소를 찾지 않는다. 문제가 된 두 의상에서 오버사이즈 실루엣과 소매에 같은 형태와 길이로 들어간 프릴이 디자인 요소의 핵심이며, 아르케 2015 F/W 컬렉션의 메인 디테일이다”라고 강조했다.
윤은혜 측은 “2008년부터 워낙 랑방 등 다양한 브랜드에서 프릴이 유행했다. 우리는 그 부분에서 영감을 받았다”라며 “의상이 흰색이라는 것과 팔에 프릴이 달린 점 말고는 앞뒤의 재질, 프릴 모양, 단추 등 모두 다르다”라며 반박했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메이크:디(MAKE:D)는 가방의 전면에 끈 형태를 부착해 손을 고정시킬 수 있는 디자인을 개발하고 실용신안을 등록했다. 그러나 현재 국내 패션시장에는 메이크:디가 선보인 디자인과 유사한 제품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민정 메이크:디 디자이너는 “국내 패션시장에서 디자인 카피 문제보다 심각한 것은 죄의식이 없는 점이다. 디자인을 도용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쉽게 베끼고, 훔치기 때문에 디자이너 입장으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라며 “해외의 경우 디자이너의 권리와 저작권을 보호해주는 분위기다. 반면 국내는 디자인의 도용 문제를 판가름하는 것조차 애매하고,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디자이너가 권리 주장을 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른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적으로 인식이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른 사람의 디자인을 훔치는 행위는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캠페인이 생긴다면 조금이라도 개선되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라며 “또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오리지널 제품이 인정을 받는다. 소비자들도 모조품, 카피 제품의 구매를 꺼려한다. 이런 상황도 우리에게 충분한 시사점을 남긴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사례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이유는 개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변화하면서 독특한 색깔과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갖춘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가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는 매장의 규모와 크기에 관계없이 오로지 ‘디자인’ 하나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는 대중성과 상품성을 겸비한 제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 중구청 시장경제과는 2014년 위조 상품을 단속한 결과 총 449건을 적발하고 6만 8,828여 점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대비 단속 건수 272건, 압수 물량은 3만 1,726점이 늘어난 수치다. 또한 압수된 물품을 정품 가격으로 환산했을 경우 약 73억 7500만 원에 달한다.
단속 건수를 지역별로 분석하면 동대문 관광특구가 285건으로 63.5%를 차지했다. 이어 남대문시장은 92건으로 20.5%, 명동 72건으로 16%로 나타났다. 실제로 동대문 도매시장에는 육심원 작가의 ‘스텔라(Stella)’ 캐릭터가 적용된 카피 제품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제품은 표절이 만연한 내수시장에서 정품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동대문에는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제품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 밴드 롤링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혓바닥 로고’를 활용한 슈즈부터 이탈리아 스니커즈 브랜드 골든 구스(Golden Goose),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Gucci),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NEW BALANCE), 스케쳐스(SKECHERS)까지 형태와 방법도 가지가지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간한 ‘위조상품의 지하경제 규모 및 손실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국내에서 생산된 위조 상품의 규모는 실제 유통가액 기준으로 연평균 5조 2,000억 원에 달한다. 이를 정품가액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연평균 25조 2,000억 원 수준이다. 실제 적발 현황을 봐도 위조 상품의 시장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 비효율적인 ‘디자인 저작권법’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옷에 대한 열정 하나로 뛰어든 디자이너들은 디자인 카피라는 문제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이들은 디자인 도용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특허청을 통해 디자인등록출원, 실용신안을 신청하고 있지만, 패션에 있어서는 비효율적인 제도라는 여론이 강하다. 패션의 경우 적게는 1년에 2번, 많게는 수차례에 걸쳐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인다. 그때마다 디자인등록출원, 실용신안을 신청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또한 디자인등록출원은 출원서 작성부터 등록 허가를 받기까지 6개월에서 1년가량의 시간이 소요되며, 약 10단계의 심사를 거친다. 이렇게 어렵게 등록한 디자인이라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100%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민정 메이크:디 디자이너는 “디자인 카피 문제는 누가 먼저 출시했는지 여부와 디자인의 유사함의 정도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라며 “하지만 패션의 경우 창작의 경계도 애매하고, 특허청에 등록을 하지 않은 디자인은 출시 기간을 명확히 증명하기가 어렵다”라며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김윤희 서울디자인재단 홍보팀 팀장은 “패션의 경우 도용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애매하다”라며 “국내 디자이너의 경우 지적 재산권에 대한 권리와 디자인 도용에 정확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시간적, 금전적인 제약으로 법적 소송을 진행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일도 부지기수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을 고려해 서울디자인재단은 빠른 시일 내에 저작권법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특허청 관계자는 “디자인 저작권법 위반으로 소송을 진행할 경우 ‘권리법인확인절차’를 특허청에 신청할 수 있다. 이를 증거로 제출했을 때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권리법인확인절차’는 디자인등록출원과 실용신안이 등록된 저작물에 해당한다. 진행 기간은 약 6개월에서 1년이 소요되며, 비용은 약 150,000원이 부가된다”라고 설명했다.
# K-패션의 세계화, 아직도 멀었다
디자인 카피는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발생하는 문제다. 비단 패션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건축 등 창조를 바탕으로 하는 예술 분야에서 더욱 또렷이 나타난다.
이러한 문제는 K-패션이 세계 무대로 진출하는데 고비로 작용할 수 있으며, 성장을 막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재능이 넘치고 역량 있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날개를 짓밟는 상황으로 번질 수도 있다. 특히 잘 팔리는 디자인을 집중적으로 생산하다 보면 획일화된 상품 구성으로 변질돼 K-패션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진행된 디자인 카피 문제를 완전히 근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지금의 상황에서 최대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디자인 저작권법을 보완하는 것이다. 또한 ‘패션’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표절과 도용의 기준을 명확히 세울 필요성이 있다.
일본은 이세이미야케, 요지야마모토, Y-3 등 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브랜드가 존재한다. 반면에 한국의 경우 내로라하는 브랜드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배 째라’식의 무분별한 디자인 표절을 중단하고, 창조적이고 건강한 생태계를 형성한다면 머지않아 국내에도 샤넬, 프라다, 구찌를 능가하는 글로벌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