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가 보이는 사람들. 사람들은 항상 원한다.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기를. 나는 생각한다. 평범한 사람은 없으며,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특별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고” – 오디너리피플 장형철 디자이너
평범함 속에 특별한 감성을 추구하는 장형철 디자이너. 요리를 공부하던 소년에서 K-패션을 대표하는 남성복 디자이너로 성장하기까지. 그의 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를 전한다.
Q 평소에 시간이 비는 날에 주로 무엇을 하세요?
저는 시간이 생기면 늘 여행을 가려고 노력해요. 여행을 가면 디자인에 대한 영감도 받을 수 있고, 또 그것이 결국 옷을 만드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를 나간 곳은 영국이랑 파리에요. 그때 당시에는 파리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민박이나 호스텔에서 지내고, 목적지 없이 길을 걷거나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녔죠. 그렇게 혼자서 시간을 보내면서 현지 문화를 몸소 체험하고 느꼈던 것 같아요. 확실히 영화나 사진으로 접하는 것보다는 실제로 경험하는 게 굉장히 크게 와 닿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혼자서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게 됐어요. 정말 중요한 일이 없으면 훌쩍 떠나서 5~6일 정도 머물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해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잖아요? 그냥 돈 없이 가서 많이 돌아다니고, 보고, 듣고 오는 것 같아요.
저는 여행을 갔을 때 유명한 관광지라던가 박물관, 혹은 사람들이 밀집된 장소는 잘 안가는 편이에요. 오히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카페나 거리에서 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문화, 분위기를 즐기다 오죠. 책 한 권을 들고 카페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건축물을 바라보는 일이 대부분이에요.
이번 년도 말에는 미국을 갈 예정이에요. 물론 오로지 여행만을 위한 것은 아니고, 오디너리피플에서 진행하는 캠페인 영상 촬영과 바이어 미팅을 겸해서 가요. 배낭을 메고 떠나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라 무척 기대되고 설레요.
Q 고등학교 때 요리 공부를 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패션’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요리를 시작했고, 대학교도 호텔조리학과로 진학했어요. 저는 이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이 사주는 옷을 입는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죠. 그런데 군대를 다녀와서 제게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군 복무 기간 중에 패션 관련된 잡지를 굉장히 많이 접했거든요. 처음에는 잡지를 보는 것이 그저 재미있고 즐거웠는데, 어느 순간부터 막연하게 ‘옷’이 좋아지고 호감이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때 ‘이런 것들을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제대 후에는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서 서울패션전문학교에 진학했어요. 학점은행제로 운영되는 곳이라 1년 정도 공부 후에 전문학사를 취득할 수 있었죠. 졸업 후에 취직한 곳이 바로 ‘비욘드클로젯’이고요.
Q 고태용 디자이너가 이끄는 ‘비욘드클로젯’에서 4년 동안 팀장으로 근무하면서 어떤 것들을 배우고 느꼈나요?
제가 비욘드클로젯의 첫 직원이에요. 약 8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책상 두 개를 놓고 고태용 디자이너와 저, 둘이서 시작을 했죠. 그때 당시에는 고태용 디자이너도 아는 것이 없었지만, 저 또한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냥 옷을 만든다는 것 자체에 흥미를 느끼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음. 비욘드클로젯에서 일할 때 고태용 디자이너가 저한테 어려운 일들을 많이 시켰어요. 처음에는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되더라고요. 근데 중요한 것은 한가지 일을 끝내면 또 다른 어려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덕분에 택배부터 포장까지 모든 업무를 해볼 수 있었죠. 사실 패션은 하나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아야 되고 다 할 줄 알아야 돼요. 이렇게 다 해낸다고 해도 힘든 곳이 패션계니까요.
Q 장형철 디자이너에게 ‘고태용 디자이너’란?
한마디로 스승 같은 존재, 산 같은 존재죠. 뉴욕패션위크 최연소 진출 타이틀부터 이탈리아 피티 워모, 서울패션위크까지. 고태용 디자이너가 밟았던 길을 그대로 따라서 걷고 있어요. 물론 이 길이 정답이 아닐 수는 있지만, 저는 끝까지 같이 가려고 해요.
Q 고태용 디자이너와 연락은 자주 하시나요?
그럼요. 오디너리피플 쇼룸하고 비욘드클로젯 사무실이 약 50m 정도 떨어져 있어요. 서로 동선이 비슷하다 보니까 길에서 자주 마주쳐요. 아. 그리고 같은 헬스장을 다녀서 굳이 연락을 하지 않아도 얼굴을 볼 수 있죠.
사실 저와 고태용 디자이너는 성격이 정말 달라요. 저는 조용하고 차분한 반면에 고태용 디자이너는 활발하고 경쾌한 사람이에요. 근데 같이 일을 진행할 땐 너무 잘 맞아서 문제에요. 하하.
Q 비욘드클로젯 퇴사부터 ‘오디너리피플’ 론칭까지,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나요?
제가 비욘드클로젯에서 근무하다가 허리 디스크로 병원에 입원을 했던 적이 있었어요.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회사를 그만두고 치료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죠. 약 한 달 정도 병원에서 지내면서 ‘나는 다시 뭘 해야 될까?’라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 ‘나만의 브랜드를, 나만의 옷을 만들고 싶다’ 였어요.
사실 브랜드를 만드는 것 자체가 금전적인 부분과 연관성이 깊잖아요. 저는 집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제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니라 대출을 받아서 작게 시작을 했죠. 당시에는 ‘아, 이 돈을 까먹어도 나한테 주는 선물이다’라는 생각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하하.
Q ‘오디너리피플’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Ordinary People. 말 그대로 ‘보통 사람들’이란 뜻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보기에는 평범하지만, 누구나 자기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긴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을 빛내줄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그런 옷을 만드는 곳이에요.
Q ‘오디너리피플’이 가진 차별화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보통 사람 중 하나인 제가 직접 피팅을 진행한다는 점이에요.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착용 후에 불편한 점이 발견되면 개선하려고 노력하죠. 조금 더 좋은 소재를 사용하고, 편안한 실루엣을 완성하려고 고민하고 또 고민해요.
Q 장형철 디자이너의 디자인 철학은 무엇인가요?
저는 싼 가격에 만들거나, 비싸게 만드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진짜 입고 싶은 옷’을 만드는 것이 목표에요. 디자인을 강조하기보다는 퀄리티를 중점적으로 생각하죠. 오디너리피플의 경우 컬렉션, 캠페인, 홈쇼핑 라인이 따로 있어요. 그 세 가지 라인에서 어느 하나도 대충 하고 싶지 않아요. 정말 제대로, 완성도 높은 옷을 선보이기 위해서 늘 심혈을 기울여요.
Q 지난 4년 동안 숨 가쁘게 걸어온 ‘오디너리피플’의 행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원래 패션이 돈이나 빽이 있다고 되는 분야가 절대 아니에요. 정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날개를 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곳이 패션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오디너리피플은 4년 동안 굉장히 많은 일들을 해낸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놀랍고 뿌듯해요.
Q 한국 최연소 남성복 디자이너로 뉴욕패션위크에 진출하셨잖아요. 왜 가능했다고 생각하세요?
뉴욕패션위크의 자격 요건은 굉장히 엄격하고 까다로워요. 일반적으로 신진 디자이너들은 서류를 통과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죠. 특히 이번 시즌에는 국내 유명 디자이너들이 많은 지원을 했었고, 주변에서도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그래서 저는 기대를 1%도 안하고 있었고요.
그러던 중에 뜻밖에 서류가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굉장히 놀랍고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부터 앞섰어요. 실무 심사 때 경쟁을 펼쳐야 하는 디자이너들이 대부분 10년 차 이상이었거든요. 그런데 다행히도 해외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았고, 결국 뉴욕패션위크에 진출하게 됐죠.
저는 컬렉션에 모든 것을 다 받쳐요. 만약에 한 달, 두 달의 시간이 남았으면, 그 기간 동안에는 아무것도 안하고 오직 컬렉션에만 집중을 해요. 어떻게 보면 이런 노력들로 조금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해외 심사의 경우 국내 브랜드가 어떤 브랜드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오직 옷만 가지고 평가를 하거든요.
대부분 10년 차 디자이너가 됐을 때 이뤄낼 수 있는 일들을 제가 어떻게 해냈는지 실감이 안나요. 아직도 의문점이 생기긴 해요. 하하.
Q 2016 S/S 뉴욕패션위크에서는 어떤 컬렉션을 선보였나요?
뉴욕패션위크에 갔을 때 블랙 컬러를 사용하란 이야기를 자주 들었어요. 근데 저는 블랙 의상은 아예 만들지 않았죠. 약간 청개구리 심보? 그리고 뉴욕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서 남성복과 실크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역시나 실크를 활용한 남성복을 선보였고요. 하하.
그때 당시에는 뉴욕에 있는 사람들한테 잘 보이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오디너리피플이 가진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어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었고, 반응은 오히려 더 좋았죠. 제 컬렉션을 본 사람들은 한국적인 색감과 동양적인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어서 신선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렇듯 저는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와 성공에 연연하지 않아요. 원래 ‘패션’에는 정답이 없으니까요.
Q 뉴욕패션위크에 이어 이탈리아 패션 페어인 ‘피티 워모’에도 다녀왔다고 들었어요. 이탈리아에 진출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해외에서 진행되는 남성복 박람회 중에서 1위가 바로 ‘피티 워모’에요.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죠. 그런데 피티 워모 측에서 덜컥 먼저 연락이 왔어요. 한국에서 같이 참여한 디자이너가 7명이었는데, 제 나이가 가장 어렸던 것으로 기억해요.
Q 뉴욕 패션과 이탈리아 패션의 차이점을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이탈리아가 수트의 고장, 신사의 고장이라면 뉴욕은 가볍게 입을 수 있는 블랙 의상이죠.
Q 2016 S/S 서울패션위크에서는 어떤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인가요? 뉴욕패션위크와 다른 점이 있나요?
서울패션위크에서는 뉴욕 컬렉션을 조금 더 보완해서 선보이고 싶어요. 사실 뉴욕패션위크 합격자 발표가 한 달 전에 나와서 제대로 준비를 못했거든요. 제가 봤을 때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선보이려고요. 음. 뉴욕패션위크와 다른 점은 여성복이 추가된다는 것? 여자도 입을 수 있는 착장을 5~7개 정도 선보일 예정이에요.
Q 여태까지 선보인 컬렉션 중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것이 있다면?
항상 마지막이 특별하죠. 저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컬렉션보다 저번 컬렉션이 훨씬 더 괜찮았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에요. 그래야 매 순간 발전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거든요. 이번 컬렉션도 여태까지 선보인 것 중에서 제일 괜찮았던 것 같아요. 하하.
Q 패션계에 입문하고 나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패션 디자이너는 쉬는 날이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몸은 쉬고 있어도, 항상 디자인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생각해야 되거든요. 자고 일어났을 때부터 다시 잠들 때까지 늘 옷만 생각하죠. 누가 보면 힘든 직업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저는 이런 과정들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재미있는 놀이라고 말해요. 정말 ‘패션’에 미치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것들이 많거든요.
Q 장형철 디자이너가 바라보는 한국 남성복 시장은 어떤가요?
대부분의 남성들의 경우 30대가 넘어가면 옷에 대한 관심도가 줄어들어요. 그리고 결혼과 동시에 패션과는 담을 쌓게 되고, 술과 가까워지는 시기가 오죠. 이러한 이유로 다양한 복종 중에서도 남성복은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편에 속해요. 한국 남성복 시장이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으로 디자이너가 노력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패션계가 힘을 모아 많은 활동과 노력을 기울여야 된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 어떤 활동을 펼칠 계획이세요?
앞으로도 해외 컬렉션과 국내 컬렉션에 꾸준히 참가할 계획이에요. 남성복 디자이너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이끌어 내려고요. 아. 오는 11월에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도 진행해요.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영상에 담아 소비자들에게 공개할 예정이죠.
그리고 이번 달부터는 레이틀리 코리아를 통해서 컬렉션 피스를 판매할 계획이에요. 기존에 없던 방식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고 좋은 일인 것 같아요. 더군다나 후발주자가 아닌 선발주자이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고요. 물론 처음에는 힘든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죠. 하지만 꾸준히 연결하고, 꾸준히 해나간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해요.
이렇듯 저는 주어진 일에 매 순간 하루하루 열심히 해요.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 기회가 찾아왔었고요. 누구에게나 기회는 주어진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본인의 능력이고요. 저는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내는 것이 목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