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스케치 #10] 스웨덴과 나: ABBA, 삐삐, 비키 그리고…
# ABBA
모든 역사는 만남에서 시작된다. 1966년 스톡홀름의 한 파티에서 비요른(Bjorn)과 베니(Benny)라는 두 젊은이가 만나 음악적인 뜻을 통한다. 각각 다른 그룹에서 활동하며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하던 뮤지션들이었지만 서로의 가치를 발견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한 길을 가게 된다. 이듬해 비요른은 한 TV쇼에서 갓 데뷔한 17세의 소녀가수 아네타(Agnetha)와 만나 음악적으로 교감하게 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베니는 노르웨이 태생의 또래 가수 아니프리트(Anni-Frid)와 만나 음악을 통한 사랑을 싹틔우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장차 전설이 되어버릴 세계적인 그룹의 멤버들이 자기들도 미처 예상치 못한 역사의 밑그림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내가 태어난 그 해에…
1974년, 유럽 최대의 국가대항 가요제인 Eurovision Song Contest에 네 멤버들의 이름을 이니셜로 조합한 ABBA(Agnetha, Bjorn, Benny, Anni-Frid)라는 그룹명으로 “Waterloo”라는 곡으로 출전하여 그랑프리를 거머쥔다. ABBA는 이때부터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다. 그해는 내가 처음으로 학교교육의 혜택을 받기 시작한 해였고, 그 후로도 라디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ABBA의 주옥같은 멜로디를 들으며 성장하였다. 가사의 뜻을 모르며 듣던 때나 알아듣는 지금이나 나는 누가 뭐래도 ABBA kid이다. 2013년 봄 ABBA 박물관이 세워진 이래 지금까지 스톡홀름으로 출장을 갈 때마다 성지순례하듯 그곳을 들르는 것은 ABBA 세대로서의 내겐 본능과도 같은 선택이다.
# 삐삐 그리고 비키
우리 세대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스웨덴 것으로 어린이 TV 시리즈물 ‘말괄량이 삐삐’를 빼놓을 수 없다. 양쪽으로 뻣뻣하게 땋아 내린 머리에 주근깨가 가득한 소녀 삐삐는 정말 우리 개구쟁이들의 우상이었다. 스웨덴의 풍요로운 삶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은 ‘말괄량이 삐삐’의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어린 가슴에 스며들면서 북유럽의 잘 사는 한 나라에 대한 환상을 증폭시켰었다. 출연 당시 8세였던 잉게르 닐슨은 지금 60을 바라보는 중년부인이 되었고 나 역시 중년의 가장이 되었지만 내 유년시절의 상상력을 풍성하게 해주었던 스웨덴의 영향력은 상당부분 잠재의식 속에 소중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삐삐와 함께 만화영화 ‘슬기돌이 비키’ 나의 성장기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스웨덴산 콘텐츠이다. 스웨덴의 동화작가 Runer Jonsson의 원작 ‘Vicke the Viking’을 만화영화로 만든 ‘슬기돌이 비키’는 정말 최고의 인기였다. 바이킹에 대한 환상과 함께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준 최초의 매개였다고 할 수 있다.
꾀돌이 소년 비키(Vicky)가 바이킹족들과 함께 항해를 다니면서 겪는 파란만장한 모험이 흥미진진했는데 특히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코를 삼각형으로 비벼대면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돌파구를 열어가는 소년 비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바이킹의 역사가 처절한 생존을 위한 살륙과 약탈의 역사였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도 바이킹=모험으로 가득한 용감한 사나이들이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을 정도이니 그 영향이 여전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 추억은 이어지고
나도 모르게 젖어있던 스웨덴을 이제 일상에서 늘 만나며 살아가고 있다. 진공청소기부터 가구, 엘리베이터, 자동차, 중장비, 쓰레기 소각로까지 스웨덴의 디자인과 제품들은 이미 우리 곁에 깊숙이 침투해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전쟁때 의료단을 파견하여 우리를 돕는 대열에 함께했던 스웨덴은 전후에도 지속적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최빈국에서 재건되도록 도왔고, 스위스와 함께 중립국감독위원회를 맡아 한반도의 평화상태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스웨덴협회의 청년분과 이사를 맡았을 때 내가 주로 한 일은 주한 스웨덴 기업의 직원들과의 친선축구경기와 봄가을 소풍 등을 주관하는 것이었다. 어른이나 아이나 즐거운 추억은 놀이를 통해서 형성된다. 학술대회가 추억으로 남는 경우는 아무리 고매한 학자라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벤트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지은 스웨덴 국가대표팀이 평가전을 위해 내한했을 때 상암동을 가득 메운 붉은 악마들 속에서 더욱 빛나는 노란 유니폼을 맞춰입고 스웨덴 응원단을 조직하여 응원하던 추억이다.
# 최근 출장을 통하여 스케치해본 스웨덴
북유럽 여행에서 노르웨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보니 아무래도 스웨덴에서의 일정은 짧을 수 밖에 없어서 대개 스톡홀름에서 1박 하거나 반나절만 보고 지나가는 정도일 때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넓은 땅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스웨덴의 숨겨진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많이 알려진 스톡홀름, 예테보리, 웁살라, 말뫼 등 남부지역을 벗어난 중부와 북부, 특히 노르웨이, 핀란드와의 접경지대의 날 것 그대로의 광활한 대자연을 만날 수 있다. 재미있는 곳으로 스웨덴과 핀란드가 만나는 곳에 있는 Green zone golf club에서는 핀란드에서 티샷하고 9홀까지 치다가 나머지 9홀을 스웨덴에서 마무리하게 되는데 두 나라 사이에 시차가 1시간 있다 보니 시간계산할 때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자주 생긴다고 한다.
스칸디나비아에서 1,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유일한 나라인 스웨덴엔 고색창연한 역사적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시원스런 레이아웃의 도시는 잘 정비되어있고, 전통과 조화를 이루면서 친환경적인 개발로 활력에 차있는 모습이 많은 나라들에게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파란 하늘에 선명한 황금빛 십자가를 그려 넣은 루터파 신교국가인 스웨덴에 드리워진 유일한 그늘은 급증하는 무슬림 이민자들로 인한 사회문제이다. 기여하는 것 없이 혜택만 빨아먹는 무슬림들은 다산으로 인구마저 기하급수로 늘어나며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장했던 스웨덴 사회복지시스템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는 형국이다. 스웨덴의 미래는 다음 총선때 보수세력이 집권하여 다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처럼 무슬림 인구의 유입을 억제하고 피땀흘려 쌓아둔 국부가 엉뚱한 곳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아내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 ‘유럽스케치’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살고 있는 우리의 좌표와 방향성을 서쪽 끝에 살고 있는 유럽적 시각으로 재조명해보는 코너입니다. 필자는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비즈니스 커넥터로 일하며 얻은 영감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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