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소녀처럼 사랑하라
붉은빛의 일몰과 푸른 하늘이 대조를 이루고, 현대적인 건축물과 중세 건축물의 오묘한 조화,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타국의 낯선 공기와 향기… 이것이 상상 속에 머무는 런던의 모습이다.
지난 2013년 혜성처럼 등장한 이수현 디자이너의 ‘런던클라우드(LONDEN CLOU:D)’는 마치 클라우드 서버에 런던을 그대로 저장해 옮긴 듯한 감성적인 디자인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런던클라우드’를 통해 낯설지만, 또 낯설지 않게 런던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며, 소녀 감성과 상반된 가치를 투영해 다양성의 조화를 표현한다.
이수현 디자이너는 일방적인 외침이 아닌 소통이 가능한 디자인을 꿈꾼다. 자고로 옷이란 자신의 생각과 표현, 그리고 가치관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며 인간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입을 수 있는 옷, 누구도 버리지 못하는 옷들로 가득한 그녀의 옷장을 소개한다.
Q ‘런던클라우드’는 어떤 브랜드인가요?
런던클라우드는 사람들이 입고 싶고, 갖고 싶고, 또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옷을 만드는 브랜드에요. 소녀의 혼란스러운 감성과 예측할 수 없는 디자인, 다양성과의 조화, 그리고 런던의 향기를 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웃음)
Q ‘런던클라우드’를 론칭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도시가 런던이에요. 처음에 갔을 때가 2008년 7월, 여름쯤이었는데 도시의 인상이 너무 좋았어요. 만약에 겨울에 갔다면 런던이란 곳을 지금처럼 좋아하진 않았을 거예요. (웃음)
런던의 거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다양한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그런 모습들이 저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었고, 또 편안한 기분까지 들었었죠. 그때 생각했어요. 런던의 향기가 묻어나는 옷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Q ‘런던클라우드’는 어떤 뜻인가요?
‘런던클라우드’의 ‘런던’은 말 그대로 영국의 ‘런던’이라는 의미를 지녀요. ‘클라우드’의 경우 다양한 구름의 형태를 보면서 떠올렸던 단어에요. 동그랗거나, 길거나, 혹은 높거나 낮은 구름처럼 옷의 실루엣과 형태를 자유롭게 변형하겠다는 뜻이죠. 그리고 구름을 직접 만져본 것은 아니지만, 소프트하고 달콤할 거라는 상상을 하게 되잖아요. 이런 모든 느낌을 ‘런던클라우드’로 표현한 거예요.
Q 런던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던데?
런던에서는 젊은 예술가들이 공원 앞이나 혹은 길거리 한복판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이런 모습들이 저에겐 신선한 충격이었죠. 그런데 더 충격적이었던 점은 지나가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그들에게 일어나라거나 비키라고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오히려 그들을 피해서 돌아갔죠. 도시의 분위기 자체가 예술가를 존경하고, 또 인정해주는 분위기였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길거리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많이 없기도 없지만, 만약에 그랬다면 사람들이 일어나라고 했겠죠?
Q ‘런던클라우드’를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요?
저는 ‘옷장에 간직하고 싶은 옷’을 만들고 싶어요. 이것에 대한 정답은 아직도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그냥 내년에도 입고 후년에도 입을 수 있는 옷을 보여주고 싶어요. (웃음)
요즘엔 트렌드가 정말 빠르게 변하잖아요. 그래서 옷이 꼭 낡지 않았어도, 유행을 따라가다 보면 입을 수 없는 옷이 생기기 마련이고요. 이런 점들이 정말 안타까워요. 제가 만든 옷이 1년이 지나도 입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버릴까 하다가도 ‘아, 언젠간 다시 입겠지?’라는 생각을 줄 수 있는, 또 라벨을 굳이 보지 않아도 ‘이 옷은 런던클라우드구나’라는 생각을 전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Q ‘런던클라우드’의 수익금 중 일부를 북극곰보호협회에 기부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 착한 브랜드로 소문이 자자하던데,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얼마 전에 글로벌 SPA 브랜드를 중심으로 사회적인 문제가 불거진 적이 있었어요. 면화 재배를 위해 심각한 수준의 물이 낭비되고, 옷을 만들 때 과다한 독성물질과 화학물질이 배출된다는 사실이 미디어를 통해 공개됐었죠. 이 소식을 접했을 때 패션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연에게 받은 도움을 되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이 ‘아! 나는 동물을 좋아하니까, 동물을 위해 기부를 해야겠다’ 였죠.
Q 신진 디자이너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패션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일종의 책임감을 느낀 건가요?
옷을 만들다 보면 버려지는 원단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리고 패턴이나 디자인을 위해 종이도 많이 사용하고요. 이런 것들이 결국 다 쓰레기로 되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불편해요. 그래서 기부를 통해 조금이라도 환경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었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말씀해 주셨는데 제가 어렸을 적부터 기부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한 번은 우연히 신문에서 ‘유니세프’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엄마한테 달려가서 ‘내가 이걸 꼭 해야 돼!’라고 말한 적도 있었대요. (웃음)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후원을 해오고 있어요. 음. 유니세프에서 후원 10년 차가 되면 감사패를 보내줘요. 그걸 받을 때마다 ‘아, 맞아. 내가 이런 것들을 하고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기분까지 좋아지더라고요.
Q 국내외 전시회 활동도 꽤 활발하시던데요? 지속적으로 전시회에 참가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지난 2015년 3월에는 상하이에서 ‘시크(Chic)’라는 전시회를, 지난 5월에는 싱가포르에서 ‘블루 프린트(Blue Print)’라는 전시회를 진행했어요. 이 외에도 인디브랜드페어, 코리아스타일위크, 대구패션페어, Who’s Next Paris 등 정말 많은 곳에 참여했어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면 분명히 얻어오는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다양한 디자이너가 한 곳에 모여 있는 경우잖아요. 그 속에서 경쟁 심리라고 해야 되나? 더 자극을 받게 되는 거죠.
제가 <Who’s Next Paris>에 나갔을 때 100% 자신의 사비를 들여서 온 디자이너들을 만나게 됐어요. 그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말 열심히, 또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를 해왔더라고요. 그들을 보면서 ‘아, 나도 정말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Q 디자인 영감은 어디서 받나요?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그렇듯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경험들을 통해 영감을 받아요. 또 가장 좋아하거나 상상 속에 머무는 이야기로 시작할 때도 있고요. 2015 S/S 컬렉션은 ‘마카롱’이 주제였어요. 제가 마카롱을 좋아하거든요. (웃음)
Q 옷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딱 하나를 고르기에는 애매해요. 예를 들면 패턴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소재가 적절하지 않다면 제대로 된 옷이 탄생하기 어렵죠. 영감을 받아 디자인을 하고, 패턴을 그려서 옷을 제작하고… 저는 이 모든 과정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자면 신진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내셔널 브랜드부터 디자이너 브랜드까지 각자의 역할은 다 다르니까요. 대중적이고 평범한 옷을 만들기에는 내셔널 브랜드가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고, 신진 디자이너들은 실험적인 정신을 가져야 되죠.
저는 2015 F/W 시즌부터 ‘선’을 이용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이런 옷들이 대중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사람들이 제가 만든 옷을 봤을 때 ‘런던클라우드 꺼 아니야?’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웃음)
Q 2015 F/W 컬렉션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중성적인 소녀의 감성을 담담하면서도 심플하고, 또 완성도 높은 의상으로 표현했어요. 곡선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직선적인 실루엣과 각진 암홀 부분, 또 앞부분은 플랫하지만 뒷부분은 입체적인 구성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변화를 시도했죠.
또 그래픽 패턴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였어요. 선을 이용해 자수정을 입체적인 느낌으로 표현했죠. 패션계에서 이런 시도가 실험적이고 신선한 것들은 아니에요. 하지만 런던클라우드 브랜드 내에서는 굉장히 특별하고 새로운 도전이었죠.
Q 2016 S/S 컬렉션에 대해 소개를 부탁해요.
이번 컬렉션은 카리브해에 위치한 바하마의 하버 아일랜드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하버 아일랜드는 ‘핑크 비치’로 유명한 곳이죠. 또 바닷가에 살고 있는 블루 크랩과 해마를 조형적인 형태로 표현했고, 해변과 파도가 오버랩 되는 모습을 입체적인 실루엣으로 완성했어요. 전체적인 컬렉션을 봤을 때 핑크 비치와 블루 크랩, 그리고 해마가 가장 큰 테마인 셈이죠.
대부분의 컬렉션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는 바로 ‘핑크’에요. 이번에도 핑크를 중심으로 블루, 화이트 등 부드럽고 감성적인 컬러가 주를 이뤘죠.
Q 패션 디자이너로서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인가요?
지난 9월에 중국 바이어를 만났는데 ‘너희 옷이 정말 잘 팔렸어’라고 말해주더라고요. 그때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사람들이 런던클라우드를 좋아해 줄 때가 최고죠. (웃음) 언젠가 한 번은 길을 지나가다가 제가 만든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을 봤어요. 그때 심장이 터질 뻔 했어요. 그 사람을 따라가서 맛있는 것을 사줘야 되나, 아니면 같이 사진이라도 찍어야 되나 한참을 생각했는데 결국 참았죠 뭐. (웃음)
Q 패션 디자이너로서 힘든 점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내수 시장에서 오프라인 판로를 개척할 때 정말 힘들었어요. 저는 옷을 생산할 때 스스로 계획하고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들이 저에게 원하는 것은 빠른 상품 회전율이었죠. 물론 주문이 들어왔을 때 빠르게 돌리는 디자이너들도 있어요. 저는 그 반대의 경우인 거고요.
Q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패션디자인과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일단 취업하라’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 이유는 간단해요. 패션 시장을 정확하고, 또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죠. 당장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고 무턱대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나와 경쟁할 브랜드가 누구인지, 또 그 브랜드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세밀하게 파악한 뒤 뛰어들어야 되죠. 그리고 책을 좀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사고력도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발상의 힘! (웃음)
그리고 패션 전공자든 비전공자든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패션은 모두에게 열려있잖아요. (웃음) 비전공자라면 전공자와 경쟁할 때 나에게 더 필요한 점을 어떻게 채울지 본인 스스로 생각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시작은 다 다를지 모르지만, 결국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친구들이 빛나더라고요.
Q ‘런던클라우드’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린다면?
전체적으로 잘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 가지 후회되는 점이 있다면 온라인 유통망에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거예요. 사실 저의 하루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온라인까지 신경 쓸 여력이 안되거든요. 이번 년도에 온라인에 신경을 더 많이 썼으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Q ‘런던클라우드’는 어디에서 만나볼 수 있나요?
국내 오프라인 매장은 코카롤리 앤 튤립(Corcaroli & tulip) 명동점과 롯데월드몰점, 언더 앤 오버(UNDER N OVER) 가로수길점, 원더플레이스 홍대점 등을 통해 전개하고 있어요. 국내 온라인의 경우 레이틀리코리아에서 만나볼 수 있고요.
해외는 중국의 상하이와 베이징에 수출되고 있어요. 러시아는 편집숍 바이에토르(BY ET TOL)를 비롯해 롯데백화점 모스크바점에도 진출을 했죠. 그 외에도 일본, 싱가포르 등에서도 런던클라우드를 만나볼 수 있답니다. (웃음)
Q ‘런던클라우드’의 내년 상반기 목표는?
내년에는 런던클라우드 내에서 컬렉션 라인, 온라인 라인, 그리고 퀄리티 라인까지 총 3가지로 나눠서 진행할 예정이에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서 상품을 공급하기 위함이죠. 그리고 현재 중국 바이어와 지속적으로 미팅을 가지고 있어요. 내년에는 좋은 파트너를 만나서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