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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바라본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쿠튀르 컬렉션

(왼쪽부터) 스테파노 필라티, 박찬욱 감독, 중국 배우 다니엘우
(왼쪽부터) 스테파노 필라티, 박찬욱 감독, 중국 배우 다니엘우

트렌드에 민감하고 매 시즌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업계의 특성상 패션 브랜드와 예술의 접목은 상업적이고 뻔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최근 이탈리아 남성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가 선보인 ‘a rose, reborn’ 캠페인은 트렌드를 넘어 사회적 가치를 창조하는 색다른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끈다. ‘a rose, reborn’은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세상에서 가장 옷 잘입는 남자’로 알려진 스테파노 필라티와 한국의 박찬욱 감독이 서로의 철학을 공유하며 만든 단편영화이다. 한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미장센 연출의 바이블’로 칭송 받는 박찬욱 감독은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그가 그리는 미래를 ‘a rose, reborn’에 완벽히 담아 냈다. 특히 이 영화는 로마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출품돼 온라인에서 화제된 바 있다.

스토리텔링의 대가답게 박찬욱 감독은 의외의 요소를 통해 단편영화의 스토리를 구상했다고 말한다. 제냐 컬렉션에서 선보인 새로운 스타일인 ‘브로큰 수트’가 그것. 언뜻 보면 한 벌이지만 재킷과 팬츠를 미세하게 다른 것으로 매치한 브로큰 수트를 두고 박찬욱 감독은 “마치 어두운 옷장에서 수트 두 벌의 아래 위를 잘못 꺼내 입은 옷 같았다”고 말하며, “혼동해서 잘못 입은 것 같지만, 자유로우면서도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것에서 단편 영화의 스토리를 구상해 나갔다”고 밝혔다.

Ⓒ 박찬욱 감독에게 영감을 준 2014 F/W 제냐 쿠튀르 컬렉션 ‘브로큰 수트’ 룩
Ⓒ 박찬욱 감독에게 영감을 준 2014 F/W 제냐 쿠튀르 컬렉션 ‘브로큰 수트’ 룩

영화 속, 자기 자신만 알던 주인공 스티븐(잭 휴스턴)은 갖가지 상황을 거치며 차츰 타인의 삶도 눈여겨볼 줄 아는 ‘새로운 리더’로 거듭난다. 15분의 짧은 시간 동안 박찬욱 감독은 주인공 스티븐을 통해 ‘리더십’에 대한 생각을 풀어 나간다. 스토리의 출발점이 된 ‘브로큰 수트’는 주인공이 ‘나’라는 껍질을 깨고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로 작용했다. ‘같지만 서로 다른 것’이 한데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여정이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장센으로 표현되어, 영화 속 두 주인공이 서로의 옷을 바꿔 입는 행위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거장의 남다른 시각이 힘을 발휘한 것.

온라인을 통해 공개되어 왔던 영화의 최종편은 지난 22일 상하이 국제패션위크의 피날레에 초청작으로 선정돼 대중들에게 처음 선보였다. 시사회 자리에 브로큰 수트를 입고 등장한 제냐의 수석 디자이너 스테파노 필라티는 박찬욱 감독을 두고 “탁월한 이야기 전개는 물론 상징을 통한 은유, 미장센을 위해 우리가 원한 단 한 사람”이라고 제작 당시의 소감을 밝혔다. 박찬욱 감독 역시 스테파노 필라티가 지휘한 제냐의 쿠튀르 컬렉션 패션쇼를 본 후 깊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며 “흔하지 않은, 철학적이고 우아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여서 반가웠다”고 전했다. 패션과 영화의 두 거장이 만나 여타 패션 필름들과는 사뭇 다른 ‘진짜 단편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영화에 출연한 이들은 모두 제냐의 의상을 입고, 주연들은 모두 스테파노 필라티가 직접 선정한 제냐의 쿠튀르 컬렉션 의상을 입어 보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박찬욱 감독과 스테파노 필라티 뿐 아니라 영국 출신 배우 잭 휴스턴과 아시아계 배우 다니엘 우, 그리고 시나리오를 함께 제작한 일본 작가 후지타니 아야코와 정정훈 감독, 영국 작곡가 클린트 만셀과 아르헨티나의 촬영감독 나타샤 브레이어가 함께 제작한 남다른 스케일의 글로벌 프로젝트로 제작 초기부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영화는 현재 제냐 홈페이지‘a rose, reborn’ 공식 미니 사이트를 통해 언제든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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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현

press@fashion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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