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해 버려지는 옷
한국: 6만4천톤
영국: 120만톤
미국: 1100만톤
‘옛날에는 입다 입어 헤져서 버렸지만 요즘은 너무 많아서 버려’
일회용이 되어버린 옷
지구가 의류폐기물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패스트패션(Fast fashion, 최신 유행을 즉각 반영한 디자인, 비교적 저렴한 가격, 빠른 상품 회전율을 말하는 패션용어)이 패션시장을 점령하면서 의류도 패스트푸드처럼 한번 입고 버린다. 더 심할 때는 입지도 않고 새 옷을 버리는 경우도 많다.
“옛날에는 옷이 해져서 어쩔 수 없이 버렸는데 요즘에는 유행이 금방 변하잖아요. 그래서 새 옷들도 집하장에 많이 나옵니다. 상당히 많아요.”
서울에서 의류집하장을 운영하는 김병수씨는 EBS의 한 프로그램에서 요즘 버려지고 있는 옷의 실태를 토로했다. 2010년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의류폐기물은 6만4천톤으로 조사됐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1000억원이라는 금액이 나온다. 가난해서 힘들게 살 때는 옷 하나 쉽게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좀 살만 하니 옷은 몇번입고 버리는 패스트푸드가 되어버렸다. IMF외환위기가 터졌던 지난 1998년 모든 국민들이 발벗고 나섰던 ‘아나바다운동(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의 준말)’은 기억 속 너머의 빛 바랜 추억이 된 듯하다. 이 현상의 큰 몫을 담당하는게 바로 SPA브랜드다.
대박주 해외SPA브랜드
지난 10년간 SPA브랜드는 국내시장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2007년 3000억원 이었던 패스트패션시장의 규모는 2011년 1조 9000억원까지 치솟았다. 이런 돈 잔치의 대표적인 수혜주는 ‘유니클로’다. 2014년 5월에 발표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업계 자료에 따르면 유니클로는 2005년 300억원으로 시작해 2014년 6천94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해 10년만에 무려 33배의 대박을 터뜨렸다. 스페인 브랜드 ‘자라’는 2천 273억원, 스웨덴 브랜드 ‘H&M’은 1천 22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소위 빅3이라고 불리는 이들 3사만 1조 44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매출액을 찍었다.
안방에서 남의 잔치만 볼 수 없다는 듯 국내 의류업체들도 속속 SPA브랜드를 출시했다. 2014년 제일모직의 ‘에잇세컨즈’는 매출액 1600억원, 이랜드의 ‘스파오’는 약 2000억원(추정치)을 각각 기록했다. 이렇듯 국내외 SPA브랜드는 쉬지 않고 돈을 벌어들이고 있고 앞으로도 이 성장세는 계속 될 전망이다.
왜 SPA?
SPA브랜드가 잘 나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 가격이 합리적이다.
– 가격에 비해 품질도 괜찮다.
– 최신 유행하는 옷이다.
최신 유행하는 옷이 가격이 합리적이고 품질도 괜찮으면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지갑을 열 수 밖에 없다. 키미제이 대표 김희진디자이너는 패션서울과의 인터뷰를 통해 “SPA브랜드의 봉제 마무리 수준도 전보다 좋아졌고 가격 면에서 매우 합리적이다. 디자인도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이 충분히 반영되었다. 결국 SPA브랜드가 패션 민주주의를 실현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한 SPA브랜드는 유행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국민성을 잘 파고들었다. 지난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OECD 주요국의 스마트폰 교체율 및 교체주기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교체율 77.1% 교체주기 15.6개월로 OECD 33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항상 빨리빨리를 외치는 우리국민과 패스트패션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폭발적 성장에 웃는 SPA브랜드, 눈물 흘리는 제 3세계 노동자들
싼데 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최근 10년간 개인서비스 요금은 60%상승했지만 여성의류 가격은 34%하락했다. SPA브랜드가 기획, 생산, 유통까지 한방에 하기 때문에 싸다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두운 뒷면에는 제3세계 빈곤층 어린이들의 노동착취가 존재한다. 세계 최대 극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에서는 약 400만명이 의류제조업에 종사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 최저임금 약 260원을 받으며 겨우겨우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그들의 피땀이 패스트패션이라는 슈퍼카(Super car)의 연료가 된 것이다. 이 슈퍼카가 점점 더 속도를 낼수록 아이들의 호흡도 거칠어진다.
지난 2014년 EBS가 방송한 <패스트패션이 말해 주지 않는 것들>에서는 참혹한 방글라데시의 실상을 파헤쳤다. 2012년 4월 방글라데시 봉제공장 붕괴사고로 1100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들의 희생이 더 안타까웠던 건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어린 소녀들이었다는 점과 그 낡은 건물이 붕괴경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용주는 온갖 협박을 가하며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그 때 상황을 방송의 증언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해봤다.
“빨리 들어가서 일해. 오늘까지 못 끝내면 넌 해고야.”
“집에 가고 싶어요.”
“뭐 집에 가고 싶다고? 넌 여기서 나가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 여기서 뿐만이 아니야. 다른 곳에서도 영원히 할 수 없어. 내가 꼭 그렇게 만들 거라고.”
“음…그래도 가고 싶어요. 새벽 3시반까지 일 하라니요. 그건 너무하잖아요.”
“(몽둥이를 들고 위협하며)너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어. 지금 나가면 지금까지 일한 너 월급도 없을 줄 알아. 잔말 말고 일해.”
그리고 고용주는 밖에서 문을 잠가버렸다. 그렇게 1100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참사는 터진 것이었다.
지구는 점점 병들고
환경오염도 심각하다. 세계농약사용의 10%가 옷을 만드는 면화재배에 쓰인다.
또한 청바지 한 벌 물세탁 1,500리터가 사용된다. 지금 이시간에도 전 세계 인구 9명 중 1명은 오염된 물을 마신다. 또한 아프리카 어린이 2명 중 1명이 매일 오염된 물을 마셔 병들어가고 있다. 오염된 물 탓에 장티푸스·콜레라 같은 수인성 질병에 걸려 20초당 1명씩 사망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천을 짜고 염료를 뺀 후에 나온 화학물질 10~15%가 폐수로 나간다. 결국 그 물 우리가 마시게 된다.
기계처럼 찍어내는 의류가 많아질수록 환경파괴도 그만큼 빨라지고 있다. 옷을 만들 때 과다한 독성물질, 화학물질이 배출되고 다량의 유해약품이 사용된다. 종국에 이런 오염물질은 우리의 환경과 건강을 해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국내에서 돈만 벌고 뒷짐지고 있는 SPA브랜드
이런 환경파괴의 주범은 패스트패션 업계다. 연매출 성장률 160% 기록하고 있는 그들은 쉴 새 없이 옷을 찍어낸다. 국내에서 한해 거의 2조원대의 매출액을 올리는 국내 및 해외SPA브랜드는 대한민국의 환경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국내 SPA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이랜드와 제일모직 담당자에게 확인해 본 결과 ‘환경오염방지운동’을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 할 계획도 현재로서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반면 해외 SPA브랜드가 국내에서 벌이는 운동은 다음과 같다.
유니클로: 2014년 6월 환경의 날을 기념해 ‘엔제리너스커피’와 함께 ‘엔젤 리사이클 캠페인’을 진행해 유니클로 제품을 전국 주요 14개 매장으로 가져오면 청바지 수선 후 남는 밑단을 활용한 리사이클 홀더와 아메리카노 교환권 증정.
H&M: 안 입는 옷을 매장으로 가져오면 5천원권 쿠폰증정. 단 4만원 이상 물품 구입시 사용가능.
국내SPA브랜드는 아무것도 안하는데 해외SPA는 이정도가 어디냐고 박수를 쳐야 할까? 안타깝게도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천문학적인 수익의 단 1%도 우리나라 환경을 위해 쓰고 있지 않는 현실이다.
SPA브랜드가 진행하고 있는 전 세계적인 지속가능성운동은 다음과 같다.
유니클로: 리사이클 캠페인 진행
회수된 제품을 선별 후 재사용 가능한 의류를 유엔 난민기구를 통해 네팔과 에티오피아 등 빈민국에 보냄. 또한 재사용이 불가능한 제품은 단열재로 재활용. 오염이 심해 단열재로도 쓰이지 못하는 제품은 발전용 연료로 사용.
H&M: Conscious Actions 진행
2014년 생산된 의류의 21.2% 오가닉 코튼(유기농 면화), 재활용 코튼 사용. 2020년까지 100% 친환경면화 사용 목표. UN국제노동기구(ILO)의 기본협정 가입해 공정협약 체결 및 노동조건 강화. 사용전기의 27% 재생에너지원에서 얻음. 헌 의류 7600톤 수거.
자라: 지속가능한 생산 시스템 도입
2020년까지 제품을 생산할 때 물 사용량을 50% 줄이고 전기를 30% 덜 쓰는 지속가능한 생산시스템도입 및 전세계 모든 매장을 친환경화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