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스트리트 패션이 핵심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기존의 제도권 브랜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참신한 아이덴티티로 무장한 스트리트 브랜드가 정체된 패션 업계의 주요 성장 동력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한 젊은이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스트리트 패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가파른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스트리트 브랜드가 화제로 떠오르자 편집숍, 가두점은 물론 백화점까지 가세해 이들을 유치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국내 스트리트 패션의 확산에 가속도가 붙은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바로 SNS의 등장이다. 2010년도 끝자락에 때아닌 ‘이미지 홍수의 시대’가 열리면서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등 각종 SNS가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로 인해 패션을 비롯한 뷰티, 음악, 그림, 영상 등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지며 대중들과의 접점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소수의 것이 아닌 다수의 관심사로 변화한 스트리트 패션이 이제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 응답하라 2016, 대한민국 ‘스트리트 패션’의 부활
젊은이들에게 있어 스트리트 패션은 독립된 매개체가 아닌 대중문화와 하위문화를 연결하는 하나의 중심체다. 이는 쇼미더머니, 언프리티랩스타 등 힙합 관련 TV 프로그램과 혁오 밴드, 자이언티 등 싱어송라이터의 등장으로 스트리트 패션이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국내 스트리트 패션을 논할 때 힙합퍼와 무신사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1960년대를 상징했던 하위문화를 국내에 최초로 전파시킨 것도 이들이다. 현재 힙합퍼와 무신사는 스트리트 패션 및 하위문화를 대표하는 소통의 장(場)으로 불린다.
국내 스트리트 패션은 1990년대 후반 무렵부터 감지됐다. 당시 우리나라 곳곳에는 언더그라운드의 흐름이 숨어 있었다. 이후 2000년대 초반이 되자 인디 문화의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유일한 독립(Independent) 수단으로 패션, 음악, 사진, 그림, 영상 등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들만의 본연의 가치를 드러낸 결과물들은 기존의 매스 미디어에서 접하는 것과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이는 문화 소비자에서 문화 생산자로, 또 문화의 일부분이 되는 유의미한 결과를 거뒀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에는 인쇄의 발달과 함께 패션, 음악, 사진, 그림, 영상 등 하위문화를 다룬 독립 잡지들이 대거 발간되며 문화의 다양성을 부추겼다. 그러나 이들의 수명은 그리 오래가지 못 했다. 기존의 상업 자본과는 철저히 분리된 채 젊은 예술가들의 색다른 시도의 일환이라는 의미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국내 최초 스트리트 매거진 맵스(maps)와 홍대 로컬 매거진 스트리트 H 등을 비롯한 몇몇의 독립 잡지와 힙합퍼(HIPHOPER), 무신사(MUSINSA) 등의 패션 웹진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타이틀을 지닌 하위문화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패션 업계의 경우 브라운브레스(BROWNBREATH)를 비롯한 독립 패션 브랜드와 라이풀(LIFUL), 베이프(BAPE), 커버낫(Covernat), 칼하트(Carhartt) 등 국내외 스트리트 브랜드 및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과 함께 국내 스트리트 패션의 15년 역사를 이끈 힙합퍼와 무신사도 재조명되고 있다.
# 스트리트 패션을 이끄는 힘: 힙합퍼 VS 무신사
힙합퍼와 무신사는 늘 함께 나열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스트리트 패션’이라는 특별한 코드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출발점부터 오늘날까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힙합퍼와 무신사는 숙명의 라이벌이자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증의 관계와도 같다. 지난 2000년 6월 한기재 대표가 론칭한 힙합퍼는 당시 문화적 화두였던 힙합을 인터넷에 옮겨 담았다.
한기재 그림그리다 대표는 “힙합퍼가 론칭 했을 때 우리의 이름대로 힙합이 트렌드였다. 힙합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을 거리에서 만나 사진에 담아 보여주는 것은 유일무이한 전례였다”고 말했다.
향후 힙합퍼는 힙합 음악을 즐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스트리트 패션과 온라인 스토어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을 만들었다. 이는 상호 간의 문화 교류를 위한 창구의 부재와 맞물려 언더그라운드를 누비던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이슈거리로 떠올랐다. 무신사의 경우도 비슷하다. 지난 2000년 조만호 대표가 론칭한 무신사는 인디문화를 토대로 패션 웹진 및 온라인 스토어를 운영 중에 있다.
힙합퍼와 무신사는 2000년대 중∙후반쯤 인디 문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사그라지자 잠시 주춤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 2010년부터 하위문화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힙합퍼는 지난해 전년대비 두 자릿수 이상의 신장률을 보였으며 올해는 오프라인 유통망 확대 및 중국 진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현재 힙합퍼는 부산 롯데백화점 광복점과 신사동 가로수길에 편집숍 541Lab 매장을 보유 중이며 올 상반기 내 중국에 진출한다. 무신사는 지난해 1,2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전년대비 2배 이상의 폭발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한기재 대표는 “힙합퍼 스토어는 단순히 스트리트 브랜드의 아이템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나아가 인디문화 자체를 지향한다”며 “최근 신사동에 위치한 편집숍 541Lab에서 진행된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WHO I MET ON THE STREET’ 사진 전시회는 지난 15년 동안 힙합퍼가 지켜온 국내 스트리트 패션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이외에도 다양한 예술 및 문화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의 명성을 이어나갈 계획이다”고 전했다.
힙합퍼와 무신사의 또 다른 공통점은 국내외 스트리트 브랜드 및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누구보다 빠르게 선보인다는 것이다. 힙합퍼 스토어는 희소가치가 있는 아이템들을 중심으로 구성한다. 유니클로도 힙합퍼가 국내에 최초로 들여왔다. 또한 일본에서만 생산되는 폴스미스(Paul Smith), 버버리(BURBERRY) 블랙라벨, 나이키(Nike) 에어 조던 시리즈 등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아이템들도 선보였다.
한기재 대표는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수준 높은 아이템들을 제공하고자 늘 노력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일본, 미국 등 해외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MD 업무도 병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스트리트 브랜드 레어 팬더(RARE PANTHER)를 단독 수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렇듯 힙합퍼는 유행에 따르되 차별화된 아이템들을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젊은이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
무신사는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현재 약 1,800여 개의 입점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베이직부터 트렌드 아이템까지 다양한 상품 구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폭넓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둘의 시작은 같았을지 몰라도 현재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힙합퍼는 인디문화를 근간으로 일관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반면 무신사는 국내 유통 패러다임의 변화에 맞춰 색다른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2000년부터 현재까지 국내 스트리트 패션의 역사를 이끌어온 두 주역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 스트리트 패션의 도발: 지금은 SNS 전성시대
젊은이들에게 있어 패션은 현시대를 대변하는 하나의 문화적 코드이자 연결고리로 통한다. 이들은 SNS를 통해 서로의 패션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자신들만의 공감대를 형성해나간다. 즉 패션의 시작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에서 비롯된다는 이데올로기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스스로 창조하는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SNS를 장악한 해시태그도 있다. 바로 ‘#데일리룩(#Dailylook)’이다. 데일리룩은 곧 스트리트 패션으로 직결된다. (현재 ‘#데일리(#Daily)’와 관련된 게시물은 총 2,500만 건을 돌파한 상태다.) 국내에서 데일리룩은 2013년 영국 옥스퍼드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 ‘셀피(Selfie)’와 함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단어다. 데일리룩 속에는 젊은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메시지가 내재돼 있다. 획일화된 패션에서 탈피할 수 있는 돌파구, 또는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무기가 바로 그것이다.
# 하위문화: 양날의 검
대중문화만이 존재하는 사회는 절망적이고 침울하다. 자유로운 사고방식과 다양한 문화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하위문화다. 또 이들의 공존을 위해 하위문화는 본래의 순수함을 유지해야 한다.
국내 스트리트 패션의 경우도 그렇다. 수년간 글로벌 SPA 브랜드 및 내셔널 브랜드의 공격적인 사업 전개로 지루함을 느낀 소비자들에게 국내외 스트리트 브랜드와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는 단비와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양날의 검’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실제로 일부 매체들은 국내외 스트리트 브랜드와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를 자극적으로 다루며 소비만을 부추기고 있다. 이들에게는 그저 소비를 위한 또 하나의 아이템인 셈이다. 대중문화와 하위문화에는 그만의 뚜렷한 의미가 있고 변하지 않는 정신과 가치가 있다. 이를 존중하고 이해했을 때 진정한 하위문화의 시대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