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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SPA 브랜드, 가격의 실체

ⓒ 포에버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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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한국'에서만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을 고수하는 글로벌 SPA 브랜드의 인기는 여전히 식을줄 모른다.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는 미국 브랜드 갭(GAP)이 1986년에 선보인 사업모델로 의류 기획, 디자인, 생산, 제조, 유통, 판매까지 전 과정을 제조회사가 도맡아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값비싼 유통망을 피해 직접 대형 직영 매장을 운영하거나, 대량 생산을 통해 비용을 절감시킴으로써 싼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고, 동시에 패션 트렌드와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하고 빠르게 파악해 상품에 반영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특히 고객 수요와 시장 상황에 따라 다품종 대량 공급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며, 기존 의류 브랜드보다 약 30~50% 저렴한 가격 책정이 가능하다.

ⓒ 패션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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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SPA 브랜드 시장의 규모는 2008년 5,000억 원, 2009년 9,000억 원, 2010년 1조 5,000억 원을 기록했다. 2013년에는 3조 4,000억 원을 넘어선데 이어 올해는 최소 4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이는 국내 패션시장 규모 44조 6,000억 원의 약 9%에 해당하는 수치다.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국내 SPA 브랜드 시장은 자라(ZARA), 유니클로(UNIQLO), H&M, 망고(MANGO), 포에버21(FOREVER21) 등 글로벌 SPA 브랜드를 필두로 제일모직의 에잇세컨즈(8seconds), 신성통상의 탑텐(TOPTEN), 이랜드의 스파오(SPAO) 등 내셔널 SPA 브랜드까지 가세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자라, 유니클로, H&M 등 글로벌 SPA 브랜드의 영향력은 점점 거세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국내 SPA 브랜드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매년 두드러지는 성장률을 보인다.

이처럼 글로벌 SPA 브랜드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다양하고 트렌디한 디자인을 빠르게 만나볼 수 있는 것과 합리적인 가격이 대표적인 이유로 손꼽힌다. 또한 가두상권은 물론 백화점, 복합쇼핑몰, 아웃렛 등 다양한 유통채널을 통한 뛰어난 접근성도 소비자들을 현혹하는데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SPA 브랜드의 ‘가격’을 파헤친다!

빠른 상품 회전율, 저렴한 가격을 최대의 강점으로 내세우는 글로벌 SPA 브랜드. 이들은 정말로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공급하고 있을까?

ⓒ 패션서울
자라를 100으로 기준했을 때 한국의 판매가는 96%로 일본 대비 34%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5. 06월 기준)

지난 4월 미국 모건리스탠리가 시장조사업체 알파와이즈에 의뢰해 주요 14개국에서 판매되는 자라 제품 7,000여 개의 가격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판매가는 스페인의 2배(96%)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92%), 중국(78%), 러시아(76%), 일본(62%), 인도(53%), 독일(24%), 이탈리아(24%) 등 조사대상 14개국 가운데 가장 비싼 가격이다.

ⓒ 패션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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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자라 2015 F/W 컬렉션 기준 재킷은 스페인 126,000원(99.95 EUR), 한국 189,000원, 일본 169,000원(17,990 JPY)으로 스페인 판매가보다 50%나 높은 가격으로 책정됐다. 또한 팬츠의 경우 스페인 50,390원(39.95 EUR), 한국 89,000원, 일본 75,000원(7,990 JPY)으로 약 78%, 스커트는 스페인 113,000(89.95 EUR), 한국 189,000원, 일본 132,000원(13,990 JPY)으로 약 67%나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 패션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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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SPA 브랜드 유니클로 가격에도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2015 F/W 신상품 기준 재킷은 일본 75,300원(7,990 JPY), 한국 99,000원으로 31%, 니트는 일본 18,700(1,990 JPY), 한국 34,900원으로 86%나 높은 가격이 책정됐다. 베스트의 경우 일본 47,000원(4,990 JPY), 한국 69,900원으로 48%, 원피스는 32,800(3,490 JPY), 한국 49,900원으로 52%가 비싸다.

유니클로의 국내 판매가는 일본보다 평균 약 50% 이상 비싸게 판매되고 있다. 인접국가 중국의 경우 일본보다 평균 41%나 높은 가격이 형성돼 있다.

ⓒ 패션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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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SPA 브랜드 H&M의 가격은 어떨까. H&M의 하프 코트는 스웨덴에서 51,384원(39.99 EUR)에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69,000원으로 약 34%나 비싼 금액이 책정됐다. 다른 제품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드레스의 경우 스웨덴 25,627원(19.99 EUR), 한국 35,000원으로 36%가 비싸다. 하지만 인접국가 일본의 경우 23,430원(2,490 JPY)으로 오히려 스웨덴보다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동일 제품 기준)

 영광스러운 타이틀 ‘글로벌 호갱님’

ⓒ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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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제품의 생산지, 유통경로, 통화, 관세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해 가격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자라의 경우 세계 최고 수준의 물류 시스템을 자랑하며, 판매하는 제품 가운데 절반 이상은 본사 인근에서 제조된다. 이는 제품의 생산지, 유통경로에 확연한 차이점이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실제로 자라는 항공편을 통해 제조된 제품을 일주일에 두 번씩 전 세계 88개국에 위치한 모든 매장에 동시 발송한다. 같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중국 등 인접국가의 제품 가격에 비해 유독 국내에서만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라는 지난해 약 2,369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글로벌 SPA 브랜드, 가격의 실체 | 1
ⓒ 유니클로

해외 브랜드의 가격 정책은 개별 품목에 대해 특정한 금액을 정하는 것이 아닌, 현지 나라의 시장 상황과 소비 패턴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 ‘한국에서는 비싸면 비쌀수록 잘 팔린다’라는 속설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SPA 브랜드들은 일제히 고가 전략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이 ‘글로벌 호갱님’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이런 ‘글로벌 호갱님’들 덕분에 수혜를 입은 브랜드가 또 있다. 바로 ‘유니클로’다.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유니클로 제품 가운데 특정 품목은 일본보다 약 2배가량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또한 국내 평균 판매가는 일본보다 약 50%나 높은 가격으로 형성돼 있다. 이렇게 불합리적인 경우에는 브랜드 충성심이 배신감으로 변모해 매출이 하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유니클로는 지난해 8,954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유니클로 관계자는 “유니클로는 국내생산이 아닌 중국, 인도네시아 등 제3의 국가에서 완제품을 사입한다”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항공료, 물류비, 환율, 관세, 인건비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가격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2배 이상의 가격 차이는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 측의 설명이다. 또한 인접국가 중국의 경우에도 일본보다 약 41%나 비싼 가격에 판매가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가능한 가격이, 한국과 중국에서는 불가능한 이유가 무엇일까?

유니클로 관계자는 “복합적인 요소들이 반영돼 나라 별로 가격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라며 반복적인 대답과 동시에 구체적인 언급은 자제했다.

한국의 1인당 GDP는 2만 8,338달러로 28위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OECD 34개국 중에서 근로자 실질임금이 줄어든 6개국에 속하기도 했다. 이는 근로자의 월급이 물가보다도 적게 올랐음을 의미한다. 반면에 일본은 1인당 GDP 3만 3,223달러로 25위이며, 물가 상승률은 지난 4월부터 0%대를 기록하고 있다.

돈은 일본보다 적게 번다. 물가는 마구 치솟고 있다. 임금은 동결됐다. 그러나 같은 제품의 값은 일본보다 비싸게 지불하고 있다. 우리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정말 ‘합리적인 가격’을 추구하는 SPA 브랜드의 진짜 모습일까? 아니면 모순일까?

ⓒ H&M
ⓒ H&M

글로벌 SPA 브랜드 H&M의 국내 평균 판매가는 스웨덴보다 약 35% 이상 높은 가격으로 구성돼 있다. H&M도 다른 해외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고가 전략’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경우는 어떠할까? 일본에서 판매되는 H&M 제품 가운데 특정 품목은 스웨덴보다 오히려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H&M 관계자는 “최근 원화 강세가 진행 중이며, 3~5년 전과 비교했을 때 유로, 미국 달러가 많이 약화됐다. 체감상 제품의 판매 가격이 비싸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라며 “H&M은 합리적인 가격을 전 세계 동시에 선보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어 “제품이 국내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항공료, 관세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가격에서 다소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라며 “이는 다른 해외 브랜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원화가 강세인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유로, 달러, 엔화가 약세인 나라와 동시에 제품을 수입했을 때 한국이 더 저렴한 가격에 들여올 수 있다. 즉, 원화가 강세면 수입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말이다. 그러나 H&M 관계자는 ‘원화 강세’ 때문에 가격에서 차이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H&M 관계자는 “H&M은 3년 전에 1차 가격 조정을 진행한 바 있다”라며 “현재는 가격 조정 계획이 전혀 없다”라고 밝혔다.

3년 전 유로 환율은 2012년 7월 31일 기준 1,383.54원, 달러 환율은 1,128.50원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2015년 7월 31일 기준 유로 환율 1,282.50원, 달러 환율 1,172.20원으로 3년 전 유로 환율에 비해 101.04원(7.3%)이 내리며 원화 강세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달라진 환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앞으로 가격 조정이 이뤄질 필요성에 대해 느끼고 있는가?

지난 2012년 유로 환율과 현재를 비교하는 것은 온전히 원화 가치에 대한 이야기다. 중요한 팩트는 '현재 판매가는 환율 대비 합리적으로 형성됐는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원화 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31일 기준 유로 1,282.50원, 달러 1,172.2원으로 지난 6월 30일 유로 1,243.33원, 달러 1115.5원보다 각각 39.17원(3.05%), 56.7원(4.83%)이 올랐다.

ⓒ 이케아
ⓒ 이케아

현재 이런 상황은 단순히 ‘의류’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한국 소비자들의 질타를 받았던 이케아의 경우는 어떠한가. 소비자 문제 연구소인 컨슈머리치가 각 나라별 사이트에서 이케아 제품의 판매 가격(소파∙수납장 126개)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평균 판매가는 522,717원으로 미국 455,344원, 독일 453,737원, 일본 437,578원보다 약 14.8~19.5%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가 제품은 무려 15~20%가량 더 비싸게 판매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케아는 하루 평균 평일 4억 원, 주말이나 공휴일은 1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비싼 가격에 격앙된 목소리를 높였던 ‘글로벌 호갱님’들은 해외 브랜드의 국내 상륙 소식에 맨발로 뛰어나가 맞이한 격이다.

이처럼 글로벌 SPA 브랜드를 비롯한 해외 브랜드들이 책정한 가격이 불공평하다 하더라도, 이를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이들의 무차별적인 횡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가치지향적인 소비가 필요하다. 우리의 소비 트렌드는 우리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더 이상 ‘한국에서는 비싸면 비쌀수록 잘 팔린다’가 아닌, ‘한국 소비자들은 현명한 소비를 즐긴다’라는 인식이 각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싸면 쌀수록 안 좋은 제품, 비싸면 비쌀수록 좋은 제품이라는 막연한 착시현상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브랜드 네임 밸류 의존도를 낮춰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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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나

리그 오브 레전드를 즐기는 패션 에디터(__*) 1:1 신청 환영 press@fashion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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