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 또는 동경으로 시작된 유럽에 대한 공부를 어린 시절에는 책으로 했다면 커서는 발로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여년간 뻔질나게 유럽을 오가며 쌓인 자료들과 사진들 그리고 여기 저기 기고한 글들이 구슬들이라면 이젠 좀 그것들을 꿰어보고 싶습니다. 이제부터 매주 한 나라씩 유럽으로 분류되는 국가들이 내게 남긴 이미지를 빠른 터치로 스케치해보고자 합니다. 각 나라에 대한 여행팁이나 최신 비즈니스 정보는 이미 인터넷에 쳐보면 넘치도록 주어져있으니 여기서 찾지 마시고, 순전히 필자의 개인적인 시선으로 그려본 유럽 52개국에 대한 스케치를 편하게 감상해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 왜 유럽인가?먼저 가장 근본적이고 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봅니다. 유럽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땅덩어리인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있고 나는 그 반대편인 동쪽 끝에 살고 있는데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도 너무나 달라서 끌렸습니다. 다름이 끌림으로 작용한 셈이지요. 아마도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사주신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며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같이 황당한 신화들이나 중세 기사의 이야기 등이 준 환상이 가슴 깊이 자리한 영향도 클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거의 모든 표준이 유럽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배우면서 그 뿌리를 확인하고픈 열망이 여행과 비즈니스까지 이어진 것 같습니다. 철학, 음악, 미술, 과학, 역사, 스포츠… 그 어느 분야도 유럽을 빼놓고는 얘기가 되지 않으며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와 상식의 상당한 부분이 유럽에서 기원한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미국이나 중국 등 덩치 큰 일부 국가들의 영향력이 큰 세계에 살면서도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다양함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통합적인 가치와 목표를 지향하고 있는 유럽에게서 배울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 어디까지가 유럽인가?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저마다 다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는 유럽은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소재입니다. 민족적으로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다양함의 극치를 보여주면서도 공동의 가치를 지향하며 획일성이 아닌 통일성을 추구해온 유럽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중인 복잡다단한 현상이기에 한두 마디로 쉽게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학자들간에 분분한 의견들이 있지만 유럽을 규정하는 지리적, 심리적 경계선은 분명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지리적으로 우랄산맥과 보스포루스 해협을 기준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구분하는 것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 하고, 종교적으로 기독교 문화권의 세계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유럽의 기본 요소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내려오는 자양분을 공통분모로 하고 있는가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유럽의 요소이겠죠. 그리고 두말할 필요 없이 유럽은 코카서스 인종, 즉 백인의 땅입니다. 아무리 다문화, 다민족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역사적으로 고대 그리스,로마에 뿌리를 둔 기독교 문명권의 백인사회가 유럽의 주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52개국의 선정기준은?어디까지가 유럽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만큼이나 유럽엔 몇 개국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역시 분분합니다. 필자는 현재 28개 회원국들이 가입해있는 유럽연합(European Union)을 기본으로 하되, 이보다 더 폭넓게 47개 회원국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유럽회의(Council of Europe)까지 범위를 확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엔 민족국가 단위가 빠져있어서 현재 53개 회원국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축구연맹(UEFA)에서 몇 나라를 더 보충하고, 개인적으로 선정한 3개국을 추가시켜 나름대로 ‘유로코의 유럽국가 목록(EuroKor list of European nations)’이라는 것을 완성하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명백한 유럽국가인 벨라루스와 바티칸이 유럽회의에서 제외되어있는 이유인데, 벨라루스는 인권문제로 바티칸은 신정국가라는 이유로 자유와 인권을 중요한 자격요건으로 내세운 유럽회의에 가입하지 못했습니다. 이들 두 나라와 함께 필자가 개인적으로 선정하여 추가시킨 나라는 코소보, 리히텐슈타인, 모나코이며 UEFA 회원국들 중 지리적으로 유럽과 거리가 먼 이스라엘과 카자흐스탄을 제외시켰고, 패로 제도는 그린란드와 마찬가지로 덴마크령이기 때문에 ‘유로코 리스트’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 국가브랜딩?한 국가가 자기의 정체성을 스스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그 존재를 알리기 위해 하는 모든 행위를 국가브랜딩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유럽스케치의 국가브랜딩 시리즈는 순전히 개인적으로 여행과 만남을 통해 각 국가들을 경험한 필자가 마음에 남은 이미지와 의미들을 그림으로 남겨보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학문적인 권위나 다뤄지는 52개국들에 대한 일반화를 시켜보겠다는 야망 같은 것은 추호도 없음을 다시 한번 밝혀둡니다.
다만 ‘국가브랜딩’이라는 틀만은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각 나라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한 사람에게 어떤 이미지로 남았는지를 그려볼 것입니다. 그동안 여행쟁이로 20여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여기저기 산만하게 기고를 해왔지만 하나의 틀을 가지고 정리해보려는 시도는 감히 엄두가 안나서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시리즈가 작은 매듭이 되어 더 큰 가치의 묶음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게 되길 기대합니다.
* ‘유럽스케치’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살고 있는 우리의 좌표와 방향성을 서쪽 끝에 살고 있는 유럽적 시각으로 재조명해보는 코너입니다. 필자는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비즈니스 커넥터로 일하며 얻은 영감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서태원/유로코 비즈니스 커넥터/www.facebook.com/eurokor.seo